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수 Sep 12. 2021

총알 한 발의 가격

때늦은 보급병의 일기, 폭력에둔감해진다는것

군대에서 나는 보급병이었다. 보급 업무는 식량과 의류 같은 생필품을 포함하여 군수물자들이 총 9종으로 세분화되어있는데, 그중 나는 총기와 탄약을 담당했다. 나는 탄약 계원으로 분류되어 일반 병사 중에서 유일하게 탄약고 출입이 가능했고 부대 내 총기 탄약 정보 열람이 가능했다. 군 간부들은 나의 자리가 사고가 나면 가장 큰일 나는 자리이기에 똑똑한 사람들을 앉힌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속으로는 정말 나에게 맞지 않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매 순간 했다. 내가 다루는 총, 총알, 그리고 폭탄은 정말로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였다. 그 무기를 만지는 일은 잠재된 폭력 속에 갇혀 이상한 공포와 무기력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 업무를 하면서 남들은  잘 모르는 총알 한 발의 가격을 알게 되었다. 

총알 한 발은 사람 한 명의 목숨과 교환될 수 있는 물건이다. 

군대에서 거래되는 총알 한 발의 가격은 약 300원 정도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이면 10명의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군대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 심심치 않게 사격 훈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사실 훈련소에서 사격이 많은 훈련병들에게 기대되는 이벤트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거 같다. 재미없는 훈련의 반복 속에서 사격이 주는 어떤 쾌감이 있는 걸까. 어쩌면 폭력에 둔감해져서 그 행위가 유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심지어 사격 표지판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내가 군대에 있던 시기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이 유행을 했다. 자신이 게임을 잘하기 때문에 사격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게임 문화를 비하할 의도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무뎌지는 과정은 무서운 일이지도 모른다.


300원의 가치를 가지는 총알과 사람의 형태를 띤 사격 표지판, 그리고 우수 사격자에게 주어지는 표창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라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군 문화의 논리.

군대라는 집단에서 총이라는 무기를 들고 발사되는 총알의 목적성은 무엇일까.


나는 사람들에게 사격이 즐거운 일보다 무서운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인간적인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총알을 만지는 나의 업무 속에서 결코 단 한순간도 보람을 느낀 적이 없었다. 


군대 내에서 폭력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곧 부적응을 의미한다. 최근 넷플릭스 <D.P.>를 보며 내가 겪은 군생활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군 조직의 진정한 공포는 부조리에 익숙해져서 또 다른 부조리를 만드는 것이다. <D.P.>는  평범한 사람이 폭력에 물드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나는 그 모습이 결코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대는 폭력을 내재하고 있다. 그 집단에 적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해지는 것이다. 시키는 일을 하고 저항하지 않는 것, 의심하지 않는 것. 생각을 덜 하며 폭력에 무뎌질수록 몸은 편해진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군대에서 자행되는 폭력만큼이나 그에 대항하는 비폭력에도 비난이 오고 간다는 것이다. 집총거부를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질타를 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군대를 거절하면 누가 나라를 지키냐는 말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총을 들지 않는 미래를 우리는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핵전쟁을 막기 위해 모두가 핵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핵을 소유하지 않는 세계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잠재적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라면,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에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총을 들고 싸우는 것만큼 총을 들지 않는 것 또한 용기라고 믿어본다. 


인간은 질병과 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아무도 죽지 않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죽이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그런 세계를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미스터 혹은 미스 쇼미더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