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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수 Apr 30. 2023

배고픔을 닮은 압박감

4월, 존경하는 작가의 시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잦았던 이번 달입니다. 저조차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고민들을 자주 늘어놓았습니다. 주된 고민은 지금 느끼는 이 압박감을 어떻게 털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압박감이 느껴질 때는 압박감을 생각하지 마.” 


마음을 써준 말이지만, 어쩐지 반 쪽짜리 위로로 들렸습니다. 압박감은 생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각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압박감과 비슷한 감각이 또 뭐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배고픔이 떠올랐습니다.


배고픔은 압박감과 닮았습니다. 가만히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고, 그 고통은 더 거세어집니다. 하지만 배고픔을 없애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바로 밥을 먹는 것입니다. 어쩌면 압박감을 없애는 방법도 배고픔처럼 간단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압박감에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뭘 먹어야 할까요. 




구체성.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 특히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구체적인 상황, 구체적인 사건, 구체적인 이미지가 좋습니다. 표현하는 것이 구체적일수록 머릿속에 더 잘 그려지고 이야기에 몰입하기 쉬워집니다. 추상적인 단어와 문장들은 너무 거대해서 누군가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철규 시인의 문장을 빌려서 부연 설명을 해보자면, ‘우주만큼 슬펐다고 한다.’보다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가 더 좋은 문장입니다. 우주보다는 지구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알 수 있는 대상이니까요. 더 크고 어려운 단어를 선택한다고 문장이 좋아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저도 글을 쓸 때 더 구체적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며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 이 작가들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을 만들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묘사를 했는지 유심히 보았습니다. 좋은 글들에는 구체성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존경하는 작가 중 하나인 한강 작가의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이 시에도 분명한 구체적인 상황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눈에 계속 밟히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무엇인가'입니다. '무엇인가'는 구체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왜 하필 한강 작가는 밥을 먹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추상적인 '무엇인가'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저는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해도 결국에는 '무엇인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삶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무엇인가'라는 단어가 화자의 마음에 있어서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 될 것만 같습니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기에 우리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방금 압박감의 원인을 찾았지만 기쁘지는 않습니다. 압박감은 아무리 해체해도 결국엔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삶의 감각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고픔을 닮은 압박감이지만 밥과 같은 구체적인 해결의 수단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당연함은 다시금 삶의 위로로 돌아옵니다. 해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니까요. 무엇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뿐이니까요.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정말로 당연한 일이니까요. 


지금 이 흰색 모니터 화면 위로 검은 글자들이 하나씩 적히고 있습니다. 이 글이 쓰이는 동안에도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동안 무엇인가를 알았으니까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알고 느끼고 있는 게 있었을 테니까요. 마치 어떤 압박감처럼요. 


오늘의 글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은 그렇게 두어도 괜찮겠습니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설명할 수 없어도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당연한 압박감은 괜찮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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