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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수 Jul 16. 2023

과정은 결과를 위한 기다림

6월, 이성복 시인의 <그대 가까이 2>에 담긴 양자역학

과정의 의미와 결과의 성취 중에 무엇이 더 가치가 있을까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만을 고른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저는 과정과 결과 둘 모두에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또한 '좋은 사람'이라는 집착으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집착입니다. 하나의 집착은 그 자체로 과정이 되고, 또 어떤  집착은 결과가 됩니다. 집착이라는 과정의 결과인 집착은 또 다른 집착의 과정이 되어서 새로운 집착을 낳는 것이 아닐까요. 


집착은 시간처럼 흐릅니다.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를 스쳐서 다시 과거가 되는 것처럼요. 시간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과정과 결과니까요. 우리는 매 순간 흐르는 시간에게 의미를 덩어리 지어서 해석할 뿐입니다. 그리고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존재겠죠.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뽑으라면 저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을 고민 없이 선택할 것입니다. 피츠제럴드의 표현처럼 시간은 물결 같고 우리는 배 같은 존재입니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우리는 거스를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모순'도 언어이고 단어이며 의미입니다. '모순'이라는 언어의 약속이 증명하듯이, 언제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현상을 대하는 우리의 이해와 해석이겠죠. 그래서 저는 피츠제럴드의 해석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합니다. 피츠제럴드의 해석과 의미부여가 절대성을 해체했으니까요. 우리가 하는 의미 붙이기가 바로 그렇습니다. 의미는 한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대상의 기존 질서에 변화를 가합니다. 이 또한 과정이면서 결과겠네요. 


그렇다면 의미가 존재하기 이전에 과정과 결과는 중첩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기다림이 길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마득한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가고 무슨 노래를 불러
당신의 귓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 

이성복 - <그대 가까이 2> 


이 시에서는 기다림은 과정이 되고 원망은 결과가 될까요. 

원망은 그다음에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기다림이면서 동시에 원망인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과정과 결과가 중첩된 것처럼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사고 실험은 사실 양자역학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판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힘을 실어주게 되었죠. 여기에도 모순이 있다는 게 괜히 또 기쁩니다.


슈뢰딩거 비판의 핵심은 불완전성이었으며, 양자역학의 핵심도 바로 불완전성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하는 의미 붙이기에 핵심도 불완전성에 있을 것만 같습니다. 


중첩되어 있던 과정에 의미가 닿는 순간 중첩은 깨지게 됩니다. 과정이 되거나 결과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슈뢰딩거의 고양이와의 가장 큰 차이는 변화입니다. 죽은 고양이는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다시 과정이 되니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원망은 그다음 무엇을 위한 과정입니다. 

미래에 대해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원망보다는 긍정적인 가치가 부여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과거가 된 수많은 의미들은 

지금 이 순간 부단히 미래에게 이름을 달아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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