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과 황인찬의 마음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일까요.
당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은 나의 평생의 숙제이며, 나의 정체성은 나 자신에게 영원한 기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우리로 만들었을까요.
이번 여름휴가는 안도 타다오의 작품을 보는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한아름 품은 기대에 아주 작은 아쉬움도 없을 만큼 멋진 전시와 건물을 만났습니다. 강렬한 자연 속에 숨겨진 콘크리트의 건물이 놀랍게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빛, 물, 바람에 관한 안도 타다오의 고민과 성취를 건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화와 변화를 통해 안도 타다오라는 예술가의 정체성이 고유하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생경한 일이었습니다. 주변의 환경이 대조적이고 자연은 계속해서 변화를 하는데 그 움직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도 잃지 않는다는 것이요.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는 것이요.
정체성은 스스로가 지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경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닌 것입니다.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안도의 작품을 감상하며 배운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안도 타다오의 정체성은 노출 콘크리트일까요. 안도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안도는 자신의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게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보기 위해 그런 곳을 찾아가죠.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 쉽습니다. '나'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그것은 세계의 유일함이 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안도의 작품에도 안도만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도 그중 일부지만, 노출 콘크리트는 그의 모든 작품에 나타납니다. 결국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간과 배경의 조화였습니다. 안도의 정체성은 그의 미학적 특징을 통해 한결같이 나타나고, 조화와 변화를 포착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함을 함께 전달해 줍니다.
다음 질문은 정체성은 어떻게 규정되는가가 되겠습니다. 저는 그 대답을 황인찬 시인의 시에서 찾아봤습니다. 정체성은 자연 발생적인 게 아니라, 어쩌면 발견되고 어떤 다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눈을 뜨자 사람으로 가득한 강당이었고 사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녹음기를 들고 지금 심경이 어떠시냐고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말을 하라고 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할 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 하늘 아래 흔들리고 물을 마시며 자라나는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 걸요
눈을 다시 뜨니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지금요 더 늦을 순 없어요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져요
무서워서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밀었고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 눈을 뜨면 혼자 가는 먼 집, 눈을 뜨면 영원히 반복되는 꿈 속에 갇힌 사람의 꿈을 꾸고 있었고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
애당초 마음도 없지만
눈을 뜨니 토끼풀 하나가 자신이 토끼인 줄 알고 머리를 긁고 있었네
좋아,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황인찬 -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전문
시의 화자는 할 말도 없으며 수동적인 행동을 하고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변화하지 않은 꿈을 꾸고 마음도 없습니다. 그랬던 화자가 토끼풀을 보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토끼풀의 정체성은 토끼풀이 아니라 토끼였습니다.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 화자가 선언을 합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라고. 이 선언은 동시에 다짐이 됩니다.
내가 포착한 나의 삶의 일부가 나의 다짐을 통해 마음이 됩니다. 이 마음이 정체성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화자의 공백을 채운 것이 결핍이 아니라 다짐이라는 시선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언제든 잃어버린 우리 속에서도 정체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정체성은 나의 삶 속에서 발견이 되고 나의 다짐으로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나는 누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핍과 상처 열등감 등이 내가 되었다고 믿었던 시기를 통과했습니다. 내가 될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욕망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이해했습니다. 이제 내가 나일 다짐을 할 시간입니다.
나의 다짐은 세계에서 유일할 거라는 믿음이
이야기의 가능성이라는 또 하나의 믿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