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장공장장 Aug 19. 2023

1화 '무엇'을 쓸 것인가?

목소리의 주인 복기復棋

1. 복기 復棋

일반적으로 초연 初演을 올리고 나면, 재공연을 하기까지 디벨롭 develop과정을 거칩니다. '디벨롭'은 창작자들마다 스타일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작가는 피드백을 바탕으로 대본을 수정합니다. 혼자 하기도 하고 제작피디나 연출과 함께 하기도 합니다. 연출도 자신의 연출방식, 무대나 조명 등을 재점검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이제부터 본 매거진에서는 '목소리의 주인'의 극작술과 연출법을 처음부터 다시 짚어볼까 합니다. 재공연을 위한 점검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바둑의 복기와 비슷한 것이지요.


방식은 '문답론'으로 해볼까 합니다. 조선최초의 여성성리학자 임윤지당이 즐겨 쓰던 문제해결법입니다. 윤지당 외에도 수많은 철학가들이 이런 방식을 했었습니다. 쉽게 말해 자문자답을 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문답론은 전제 조건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자기 객관화이고요. 그밖에 자신을 돌아볼 정도의 학식과 그에 걸맞은 인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부족한 저와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들을 비교할 수 없겠지요. 저는... 음... 그냥 전공자 수준?의 자문자답이긴 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_자신의 작품을 객관화하기_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답해 보기_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답니다. 물론, 사람들이 볼 때 제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요;;;;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님은, 아마 '글쓰기'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분이시겠지요? 브런치가 그런 곳이니까요^^ 저의 과정과 나름의 해결답안이 독자님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선, 문답을 하기 전에, 제가 공모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서 공유할게요. 그리고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오르면 '목소리의 주인'을 대상으로 문답론 형식의 복기를 하겠습니다.





2. 대상을 정하기.

당신은 지금 극작을 하려고 한다. 에세이와는 분명 다른 글쓰기이다. 다른 장르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이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우선 무엇을 쓸 것인가,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잠깐, 그전에.


과정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결과가 중요하다. '잘' 쓰자. 그리고 계획한 프로젝트는 '잘' 해내자. 과정 중심적 사고방식은 문청이나 학생 시절에 경험해야 할 부분이다. 결과 지향적인 작가가 되자.


지금 당장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네이버에서 '엽서시'라고 써보자. 그러면 '엽서시 문학공모'라는 사이트가 나올 것이다. 문학 공모전 사이트다.


엽서시 문학공모 https://www.ilovecontest.com/munhak/

여기서 당신이 도전할 만한 공모전을 찾아보자. 공모전마다 주제가 다르다. 자유주제가 많지만 개중에는 아예 주제를 정해주는 경우도 있다. 엽서시 말고 스토리움이라는 공모전 사이트도 있다. 예술경영워지원센터,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등. 계속 찾자. 그러다 보면 개중에 마음에 드는 게 하나쯤은 나온다. 굳이 극작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 공모가 많다. 취향껏? 골라보자.


스토리움 https://www.storyum.kr/story/progrm/master/listStartN.do?siteSe=story&menuNo=500004&siteId=5

반드시 본인이 도전할 만한 공모전을 찾자.

왜?


접수마감일이 정해져 있으니까!!


이렇게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하자. 어떻게든, 심지어 미완성이더라도 자신이 정한 공모전에는 꼭 내기로!!


참고로 예술은, 그리고 글쓰기는 디테일이다.


-이거 안 내면 난 정말 벌레만도 못 한 인간이다.

-공모전 놓치면 앞으로 난 하늘을 쳐다보며 살지 않겠다, 등등.


위의 예시처럼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설정이 추가되면 더욱 좋다;;;


작품의뢰나 원고 청탁을 받다 보면 마감일자를 어기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날짜를 지키겠다고 다짐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마감일을 준수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습관을 들여도 변수가 발생하는 게 글쓰기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시뮬레이션은 '공모전'을 하는 것이다.





3. '무엇'을 찾는 과정.

작년 겨울, 나는 '강릉을 소재로 하는 창작콘텐츠' 공모를 찾았다.

(전형적인 글쓰기 공모전은 아니다. 하지만 패턴은 비슷하니까 이 공모를 예시로 하겠다)


흐음, 그렇다면 강릉을 소재로 하는 글쓰기를 해야 할 텐데...


우선 강릉 출신의 역사적 인물들이 떠오른다. 율곡 이이, 신사임당, 허균, 허난설헌 등등. 일단 신사임당은 패스. 아무리 셈을 해봐도 잘 쓸 자신이 없다. 마치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글을 쓰라는 느낌?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있다. 사실, 현모賢母는 맞지만 양처賢母는 아니란다. 남편과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율곡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예술가로서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 그래, 내가 찾은 자료는 이 정도이다. 후우, 인물의 이미지가 너무 고정되어 있다.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자면 좀 더 비틀고 꺾어줘야 하는데... 역시나 이순신만큼이나 대하기 어렵다. 어쩐지 써도 재미없는 내용이 될 것 같다. 이것은 신사임당에 정통한 작가들에게 맡기고, 패스하자.


율곡 이이? 십만 양병설? 패스. 허균? 흐음, 허균. 허균이라... 허균은 홍길동전을 쓴 작가이다. 당시에는 그 정도만 알고 있었다. 홍길동과 관련한 콘텐츠들은 이미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일단 보류. 나는 가급적이면 덜 언급이 되고 독자나 관객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허난설헌은 어떨까?


몇 해전 대학로에서 '난설'이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예술은 선빵?이다. 난설에 관한 콘텐츠가 나왔다면 심사위원들 또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굳이 기발표작을 대상으로 경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난 이미 '임윤지당'이라는 인물을 대상으로 작품을 집필하고 초연을 올린 적이 있다. 그녀는 조선최초의 여성 성리학자였으며 '남녀평등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당연히 남존여비 사상이나 여성으로서 받은 차별들이 작품에 언급되었겠지? 어쩐지 난설과 비슷한 흐름의 이야기가 될 거 같다. 당분간 이런 주제는 패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인물은 이매창이었다. 그녀는 기생이었다. 여류시인이었으며, 허균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앞서 인물들에 비하면 화제성도 낮고 언급도 덜 되었다. 흐음,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나올 것도 같은데... 여기서 고민이 시작된다. 이 공모가 순수예술 쪽이었다면 나는 이매창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지역의 공모이다. 해당콘텐츠가 선정이 되고 개발이 될 경우 다양한 문화 예술 및 유관사업들을 병행할 경우가 많다. 순수예술보다는 대중적인 관심을 좀 더 염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작가가 고민할 주제는 아니지만, 관객층도 염두할 필요도 있다. 거듭 말하지만 작가의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부분이 늘 신경이 쓰인다. 단체를 꾸리면서 기획 및 프로듀싱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아마 지역의 시민일 거야. 시민은 강릉에 고정되어 있으니까, 패스. 신규 관객들의 유입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 보자. 강릉이니까, 분명 관광객들이겠지? 분명 바다를 보러 왔을 거야. 강릉 맛집이나 경치가 좋은 곳도 둘러봤을 테고... 그리고 도착한 극장.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이매창일까, 허균일까?


나라면 '홍길동이 나오는' 허균이다. 여행을 하러 온 강릉이다. 진중한 이야기보다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쪽을 보고 싶을 것 같다. 아마, 심사위원도 같은 생각일 거 같다. 그렇다면 대략 어떤 스타일의 글을 써야 할지 '사이즈'가 나온다.


... 허균 쪽으로 점점 무게가 실린다. 허균, 홍길동, 이매창 순으로 자료수집을 시작한다.


  

평전은 가장 좋은 자료들이다. 자료수집을 위해 책을 사는 것에 돈을 아끼지 말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읽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나한테 도움이 된다. 긍정적인 영향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고백하자면 나는 독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교 시절에는 정말 많이 읽었는데, 아무래도 독서를 하는 습관을 잊어버린 거 같다. 대신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만화는 정말 많이 본다. 뭐, 여하튼, 독서를 싫어하는 나지만, 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평전을 뒤적거리며 읽어보겠지? 독서하는 습관이 없다면, 어떻게든 독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면 된다.


설마, 극작가라고 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세상 평온한 미소를 짓는,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우아하게 넘기는,

그런 모습을 상상한 건 아니겠지?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다. 허균은 소설가 이전에 정치가였다. 그런데 이 양반, 서얼철폐 등 계급에 관해서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 오호라, 평등사상을 주창했네? 기득권인 양반들이 눈을 부라리며 바라보고 있는, 그 조선 사회에서 말이다.


허균 왈,

천하에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로지 백성이다.

불이나 물, 호랑이 보다 백성이 더 무섭다.

그렇다면 높으신 분들은 마땅히 백성을 두려워야 하는데,

이게 그렇지가 않다.


이거, 이거, 이야기가 좀 되겠는데?  

그래, 허균이다. 허균을 좀 더 파야겠다.



그다음 순서는 '허균'에 관한 논문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논문은 검증된 자료이다. 이따금 뉴스에서 유명인들의 논문 비리? 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건 소수이다. 대다수의 논문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을,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알려준다.  


자료수집은 전방위적으로 해야만 한다. 내가 허균에 관해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허균의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내가 소방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뮤지컬 사칠 47을 썼듯이, 허균을 알아야 그에 관한 이야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허균을 조사하며, 가장 관심이 간 부분은 '유재론'이었다. '잘 사는 집에 아이라고 해서 재능을 과하게 주고 못 사는 집 아이라고 하여 재능을 덜 주지 않았다'는 참으로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 사회는 이러한 '상식'을 무시했나 보다. 가문의 배경을 보아가며 인물을 뽑았다고 한다. 어쩐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통용할 만한 지적이 아닐까?


다른 카테고리에서도 언급했지만, 난 직관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이다. 자료 수집 중에, 정말 뜬금없이, 갑자기, 훅!!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허균이 왕을 만나 '조선의 현실'을 말하기 이전에 마음을 다잡는 모습. 정좌하고 앉아 관객들을 향해 '유재론을 말하는 것' 말이다.


그래, 이 장면만큼은 꼭  작품에 넣어야겠다. 허균이 자신의 정치적 사상인 유재론을 말할 때마다, 종소리, 북소리, 징소리 같은 류의 효과를 살짝살짝 넣어줘야지. 그리고 유재론을 말하고 나서 오늘날 조선의 현실을 한탄하는 대사도 추가해야겠다.


목소리의 주인은.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전에, 이 장면부터 썼다.

자료 수집 중에 갑자기 떠오른 이 장면!


https://youtu.be/VBObhmlVHp0

공연 장면


이 한 장면만으로도, 목소리의 주인은 '충분히 공연의 가치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Q. 무엇을 쓸 것인가?

A. 허균에 관해서 쓸 것이다.




덧붙임

글을 쓸 때 염두해야 할 것은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왜' 쓰는 것인가.


작가라면, 이 세 가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을 기획자나 연출, 그리고 관객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섹션에서는 극작가로서 '무엇을 쓸 것인지'에 관한 나름의 생각과 이야기를 끄적여 봤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어떻게 쓸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꾸벅/인사.

매거진의 이전글 목소리의 주인 15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