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콩맘 May 26. 2021

모유수유 사관학교

2주간의 조리원천국에서 벌어진 일

병원에서 임신이 확인되면 곧바로 알아봐야하는 게 있다. 천국이라고 불리는 산후조리원인데, 인기 많은 곳은 임신 9주차에도 예약이 끝나기 때문에 되도록 산모의 취향에 맞는 곳을 찾는게 중요하다.


결혼 전에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던 사람이라, 산후조리원을 선택할 때 정말 많이 고민했다. 출산 병원과의 이동거리, 신생아실 선생님, 대형병원 연계 회진, 마사지, 남편 면회 여부, 조리원 동기 등 모든 산후조리원마다 강점이 달랐다. 한가지 확실한 건 다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고민을 끝내고 나는 신생아실 선생님의 경력이 오래된 곳을 선택하기로 했다. 후보는 대략 3곳 정도로 추려졌다. 첫번째는 청담에서 최고급으로 꼽힌 산후조리원. 하지만 2주 기준으로 일반실 가격이 2200만원이라고 불러서 아무리 셈을 쳐봐도 무리였고 결국 예산 초과로 패스하기로 했다. 두번째 후보는 서울에만 수십개 지점이 있는 체인이었는데 마사지를 무료로 추가해준다는 제안을 받았다. 출산 병원과 걸어서 3분 거리여서 괜찮아보였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산모가 머무는 방에 창문 하나도 없었고 답답한 느낌에 역시 패스했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동남아 고급 리조트를 연상케 하는 외관과 통유리창 너머로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마사지를 포함한 가격이 1000만원에 가까웠지만, 이미 첫번째 산후조리원에서 불렀던 가격 허들이 높아져버려서 임신 16주쯤 주저없이 이 곳에 계약금을 걸었다.  

 

여섯달이 지나고, 아기가 태어났다. 익히 들었고 기대했듯 산후조리원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내가 좋아하는 두부구이와 치킨, 간장 소스 베이스의 소불고기 같은 균형잡힌 식단이 나오고 삼시세끼 밥 먹은 뒤 빵, 떡, 케이크, 쥬스 등 간식도 꼬박꼬박 나온다. 미역국이 질리면 구수한 된장국을 새로 끓여 넣어주신다. 늦잠 자고 있으면 침대 옆으로 음식이 올려진 식사 식탁을 들여와주신다. 매일 나오는 빨래들은 아침에 내다놓으면 점심쯤 깨끗하게 세탁돼서 돌아온다. 하루에 한번씩 전신 마사지가 예약돼 있고 마사지를 받고 땀이 난 상태로 모유수유를 촉진하는 허브티를 마시며 방으로 들어오면 누군가 말끔하게 청소를 해놨다. 밥 먹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드라마 '산후조리원'도 보고 자유, 자유, 자유였다.


하지만 자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시간마다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온다. 모유수유 콜이다. 내가 선택한 산후조리원은 모유수유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곳이었고, 아기가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낼 때 마다 산모를 신생아실 옆 수유실로 호출했다. 일단 전화를 받으면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고 수유쿠션을 들고 마스크 끼고 마실 물을 챙겨 수유실로 출동한다. 1분 안에 모든걸 마쳐야한다!


수유실에 들어가면 메뉴얼이 있다. 일단 회음부 방석에 깔린 자리에 앉으면 신생아실 선생님이 아기를 데리고 들어온다. 한쪽 가슴을 두손으로 잡고 시계 방향 두번, 시계 반대방향 두번 돌리는 기저부 마사지를 한 뒤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고 나서 아기를 수유쿠션 위에 올려 안는다. 아기의 입을 크게 벌려 햄버거를 '와앙'하고 먹는 느낌처럼 가슴을 가까이 가져다 대준다. 아기는 아래턱을 움직이며 쭉쭉 모유를 빨아먹기 때문에 아래턱이 더 깊숙하게 들어갔는지도 확인한다.


말이 쉽지, 이 메뉴얼대로 익숙해질 때까지 1주일이 걸렸다. 처음엔 수유하는 자세가 엉성해서 아기가 모유를 먹다가 사례가 들리기도 하고 아기가 다 빨아먹지 못하는데 모유가 차고 있는 내 가슴은 돌덩이처럼 아파와 울기도 여러차례였다. 아기를 낳으면 모유수유는 자연스럽게 혹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엇이든 쉬운건 없었다.


우리 산후조리원에는 국제모유수유 전문가 자격증을 구비한 가슴마사지 실장님이 있었다. 인터넷 후기를 통해 '금손'이라고 익히 들어서 가슴마사지 시간이 오기만들 기다렸다. 제왕절개를 하고 1주일 동안 젖이 돌지 않아 모유수유마저 실패하는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가슴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다. 국제모유수유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리원 가슴마사지 실장님은 누워있는 나의 가슴을 요리조리 만져보더니 "엄마 걱정말아라, 가슴 마사지 몇번 받으면 막힌 유선이 뚫린데이. 모유량은 꽤 되는데 지금 유선이 막혀서 그래요. 아기가 요리조리 빨아먹으면서 모유량도 저절로 맞춰진다~!"라고 쿨하게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실장님은 아기 우유병 하나를 들고 맨 손으로 나의 가슴 이곳 저곳을 꾹꾹 짰다. 처음에는 모유가 방울 방울  맺히더니 나중에는 가느다란 줄기로 쭉쭉 나왔다. 꾹꾹 짤때 느낌은 마치 대바늘로 여기저기 찌르는 아픔이었다. "앜!!!!!!!!"소리가 절로 나왔다. 가슴마사지 실장님은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열심히 내 가슴마사지에 집중했다. 한쪽당 20분씩 40분이 지났고, 겨우 20ml씩 나왔던 나의 가슴은 달라져있었다. 땅땅하게 불었던 가슴은 체한 속이 뚫리는듯 시원했고 고인 모유가 빠져서 말랑말랑해졌다. 한쪽에서만 모유 120ml가 나왔다. 참고로 생후 2주째 된 신생아들은 한번에 40~60ml씩 먹는다.


"엄마, 이렇게 모유량 넘쳐나는데 잘 못빼내서 아팠던거데이. 이제 애기가 열심히 빨아먹으면 가슴 아픈건 저절로 나아진다~! 가느다란 유선 몇개는 이제 지지고볶고 하면서 하나로 합쳐져야 애기도 잘 빨아먹어요. 여기 땅땅한 부분은 무조건 풀어줘야 하지 안그럼 엄마 가슴 난리난다~!"


모유수유는 엄마만 일방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이것도 아이와 일종의 협동 과정이었다. 아무리 엄마 가슴에서 모유량이 많아도 아이가 빠는 힘이 약해 다 먹지 못하면 모유량은 줄어버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모유량이 적어도 아이가 자주 빨고 잘 먹는다면 저절로 아기의 뱃구레에 맞춰 엄마의 모유량도 늘어난다.


모유수유도 그렇고, 앞으로의 육아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원칙이 생겼다. 누군가의 일방향이 아닌 쌍방의 협동 과정을 통해 조율해 나갈 것,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 순간을 즐길 것!


수유쿠션 위에 누워 눈을 감고 '꿀떡꿀떡' 엄마 젖을 쭈욱쭈욱 빨아먹고 있는 순수하고 맑은 천사같은 우리 아기를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 밖에 안든다.


힘든데, 정말로 행복해...


작가의 이전글 호르몬의 노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