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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닙 May 23. 2022

홀가분함 속으로

나의 휴학편지 1호

01


“결단을 내리는 순간 나는 홀가분해지는 거야.”



  더운 여름에 접어들어 가는 6월, 고단했던 3학년 1학기를 겨우겨우 끝냈다. 수업마다 쏟아지던 과제들과 다정하지만은 않은 컨펌들 속에서 나의 중심을 꼿꼿하게 지켜내는 일은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약 4개월 동안 전공수업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간 만큼 날 것의 스트레스도 몰아쳐 왔다. 2학년부터 찾아온 코로나와 이렇게 오래 붙어 지낼 줄 몰랐고, 본가에 내려와 노트북 모니터를 통해 듣는 비대면 수업은 탄산이 빠진 콜라를 느릿하게 마시는 기분이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나아지는 듯했지만, 학교라는 공간과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이 주는 힘이 빠진 것을 채워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창의적인 발상을 요구하는 과제에 부담감도 커졌고, 긴 시간 동안 마음은 조금씩 무거워져만 갔다. 어느덧 종강과 함께 여름방학이 찾아왔고, 결국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 휴학 신청 버튼을 클릭하기 전까지는 생각이 많았지만 막상 누르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1년간의 보장된 쉼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커리큘럼에 따라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까지 쭉 걸어왔다. 중간중간 자유로운 방학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그들이 중간에 그어놓은 ‘기간’ 중 하나였다. 오로지 스스로 생각하고 도전하며 혼자서 걸어볼 만한 긴 시간은 내가 가져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학부 2학년 때 남들보다 늦게 커리큘럼을 따라잡는 노력 끝에 영상과에서 디자인과로 전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걸어 나갈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았다. 수많은 갈림길 속에 우물쭈물 서 있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소소하게 재밌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기에 온 마음이 빠져드는 기분을 다시금 알고 싶었다. 휴학 후 분명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도 없었고,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지 않을 1년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길고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 다가올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여름. 사계절이 담길 1년은 지금껏 내가 느껴온 시간과는 그 결이 다르지 않을까 기대한다.   


엉성하게 채워가도 좋을 나의 스물둘과 스물셋을 응원하며, 이곳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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