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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닙 Oct 05. 2022

우린 아직 여기에 있어 (2)

Lisbon, Portugal 09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일몰을 보기 위해 카스카이스 해변으로 향했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주된 대화의 재료는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였다. 각자의 이야기 속에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알맹이가 들어있었고, 그것의 질감과 색감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작은 대화 속에서도 여러 가지를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윤영언니,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여행을 온 다혜 언니, 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니며 경험을 쌓는 진형이, 그리고 스무 살 끝자락에 무작정 떠나온 나까지. 모두 자기만의 줄거리를 품고 있었다. 삶의 방식도, 색깔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만난다는 것. 마치 이곳에서 만나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톱니바퀴가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를 맞닥뜨릴 때의 느낌. 그리고 곧 그것이 참 멋진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


도착한 해변은 아주 고요했다. 느린 파도가 모래사장에 부딪히는 소리,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움직임, 그리고 우리들의 낮은 대화만이 그 공간을 메꾸고 있었다. 엷은 분홍색이 어우러진 하늘은 아름다웠다. 슈퍼에서 사온 작은 병맥주를 꺼내어 소소한 건배를 했다. 거기에 짭짤한 감자칩까지 더하니 하나의 작은 파티가 열렸다. 시간이 지나도 지금을 선명히 꺼내 볼 수 있기를 바랐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아직 여기에 있지만, 더욱 오래 이곳에 머무르고 싶은 그날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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