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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닙 Oct 05. 2022

우린 아직 여기에 있어 (1)

Lisbon, Portugal 08

세상의 끝에 피자 한 판을 들고 가본 적이 있나요.


여행에서 만난 언니 두 명과 내 또래 남자와 함께,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호카곶으로 향했다. 아찔한 절벽에 서서 저 아래 출중한 빛을 뿜어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자유 그 자체였다. 모든 복잡함을 깨끗한 단순함으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내 옆에 있던 그는 조용히 말했다. “해가 바다에 깨지고 있네.” 처음 들어보는 표현이었는데 눈이 동그래질 만큼 좋았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바다에서 그에게로 옮겨갔고, 그 표현에 대해 되물었다. “응? 해가 바다에 깨지고 있다고?” 


그의 표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했다.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는 이 친구는 진해의 바다를 보며 동기들과 자주 그런 말은 한다고 했다. 내게는 참 생소한 말이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까 그만큼 더 당연하게,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았다. 반짝인다는 말은 발끝만큼도 따라올 수 없었고, 눈이 부시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정말 파도의 물결표면 위로 강한 햇살이 깨지고 있는, 무엇하나 보태지 않고 순수히 나타낸 표현이었다.


호카곶은 바람의 언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거센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왔다. 맑고 신선한 공기에 온 사방이 또렷하게 보였다. 언덕 위로 드넓은 들판이 펼쳐졌고, 그 아래로는 아득한 절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근처에서 열린 버스킹 공연은 지금의 장면에 청량한 감각을 더했다. 우리는 이곳에 오기 전 포장해 온 피자를 먹기로 했다. 눈빛과 고개의 끄덕거림으로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 네모 넓적한 피자 박스를 열어보니, 이미 다 식어서 굳어버린 치즈가 반겨준다. 그 위로 페퍼로니, 통통한 올리브, 브로콜리 등이 한가득 올라가 있다. 산 정상에서 컵라면을 먹으면 이런 맛일까. 세상의 끝에서 먹은 피자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챙겨온 캔 콜라까지 남김없이 마시며 깔끔히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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