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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선생 Oct 27. 2018

에필로그

파라과이는 교사로서 성장의 터전이었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5년

 올해로 5년째 파라과이에 살고 있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일로,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얼마 전 한국학 컨퍼런스로 카자흐스탄에 갔을 때 많은 선생님들께서 파라과이에 간 지 얼마나 됐는지 물으셨다. '5년이요'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와, 꽤 됐네'라고 답하셨다. 그리고 그중 어떤 선생님께서 '5년이면, 정이 많이 드셨겠네요'라고 하셨다.


 맞다. 돌아보니 정이 많이 들었다. 컨퍼런스 발표 준비를 하며, 학과를 소개하기 위해 우리 학생이 만든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학과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학과 소개 비디오가' 곧 이 곳에서 나의 역사이기도 했다.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지나가며 눈물이 났다. 헤어짐이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는데, 문득 '내가 정말 정이 많이 들었구나'가 느껴졌다.


'5년이면, 정이 많이 드셨겠네요'라는 질문에 '네, 정말 정 많이 들었어요'라고 단번에 답을 하게 되었다.

ISE 한국어 교육학과 졸업생 Cindy Azucas와 3학년 학생 Rosa Vega가 만든 2017 학과 홍보영상
정리

나의 20대의 절반이 여기에 있다. 그야말로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었다. 그 시간들을 지금 기록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남미에서 5년, 귀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와서 '무식하면 용감함'을 보여줬던 시간이었다. 좌충우돌 부딪히며 하나하나 몸과 머리에 새긴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고 잊혀질 것이라는 게 슬펐다. 갑자기 지난 5년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잊혀지기 전에, 글로써 그간의 시간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글로 남기고 싶은 아이템들을 뽑아서 정리하고, 어떤 내용을 적을 지도 정리했다.

2018, 학생들과 마지막 수업 날


성장

사실, 5년 전 '교사'라는 직업을 너무나도 간절히 원해서 시작했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작하고 보니 잘하고 싶었고, 나와 잘 맞았고,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 매거진 <나는 남미의 선생님>은 학과의 성장 스토리이며 내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5년을 글로 정리하면서 한번 더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결정의 과정을 돌아보면, 쉬웠을지도 모를 결정을 어렵게 내렸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교사라는 직업, 파라과이 학생들, 파라과이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사랑과의 헤어짐은 누구든 슬프다. 멋 모르고 만나게 된 '처음'이라는 이름의 모든 것들이 마음속 깊이 남아버려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파라과이를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처음과 사랑의 기억들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이 글이 미래의 교사를 꿈꾸는 많은 이들과 현재 교사의 길을 걷고있는 이들, 그리고 해외에서 삶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을 가을을 향하여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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