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현 Jan 04. 2022

작가 노트) 03


01 연말연시라고 해서 특별히 우울하거나 달뜨지 않았다. 평소처럼 운동을 했고 소설 및 시나리오를 구상하며 글을 썼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짜증을 좀 냈다. 

십 대, 이십 대 때에는 나이를 먹는 게 불안하고 아쉬웠다.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것을 실행할 능력과 끈기를 갖추지 못해서 스스로를 좀먹는 느낌이었다.     

서른 번의 겨울을 보내고 난 뒤, 여실히 깨달은 것은 예전에 품었던 생각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다소 느리더라도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내면의 확신이었다.

예전처럼 하나의 작품에 더 이상 목을 매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면 탈고를 한 뒤, 여유를 갖고 얼마간의 시간을 두게 되었다.

습작들은 커다란 자양분이 된다.      

삶은 가끔은 무던히 단순하고 담백하기 그지없다. 웃고 떠들고 공백에 빼곡히 채워 넣지 않아도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 털 수 있는 것은 툴툴 털어버리고 남아있는 것은 남아 있는 대로 묻히고 가기로 했다.


02 작년에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다가와서 마음이 아팠다. 장례식 때는 조문객들을 맞이한다고 경황이 없었다. 손님들이 하나 둘 떠나고, 가족들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을 때 아픔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장례식을 무사히 치르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나사가 몇 개 풀려 있었다. 도어 록 패스워드를 깜박하거나 휴대폰이나 마스크 따위를 들고 있으면서도 이곳저곳 찾고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소중한 이의 부재를 느끼고 천천히 스며드는 슬픔과 고통을 맞이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게 되었다. 나는 의지가 굳세지 못하다.     

그가 살아생전에 썼던 수기를 읽었다. 내가 읽기를 바라셔서 만날 때마다 권유하던 글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다음에 읽겠다고 수차례 거절을 했었다. 그를 이해하는 게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어리고 연약했다. 사랑만 받고 싶고 싶어서 한 사람으로서 소중한 사람을 이해하는 게 무서웠다. 

수기에는 그가 있었다. 그는 아파했고 이해받고 싶어 했으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사랑하고 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게 뒤늦게 너무 후회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작가 노트)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