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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Nov 20. 2022

사워 비어를 좋아하세요?

재수 없지 않은 애호가가 되는 법

누군가 제일 좋아하는 술을 물어보면 요즘은 맥주라고 답하고 있다. 라거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맥주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사워 비어를 좋아한다. 사워 비어는 효모나 박테리아를 이용해서 발효 과정에서 신맛이 나게 만든 맥주인데, 사워 비어를 처음 맛봤던 것은 종로의 <서울 집시>에서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첫 입 마셨을 때 눈을 꼭 감게 되는 신맛에 놀랐더랬다. 신맛 때문에 마시고 나면 군침이 싹 돌아서 첫 잔으로 주로 마신다.



신맛에 눈을 뜨고는 다른 수제 맥줏집에 가서도 메뉴판에서 ‘신맛’이라는 설명이 보이면 일단 시키곤 했다. 그때마다 직원분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좀 많이 신 편인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오호라… 그 정도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맛이라는 거지? 그 걱정을 듣고 어쩐지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수, 홍어, 선지 등 호불호가 엄청나게 큰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깨 올라가는 바로 그 기분을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바로 이때,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보편적인 맛을 깎아내리는 것. 인디 음악에 심취해 주류를 배척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인디 병”처럼 호불호 강한 맛을 좋아하는 나에 취하면 곤란하다. 사람이란 간사해서 "마니아"라는 이름표가 생기면, 비 마니아 영역, 대중에게 많이 소비되는 것들을 별 가치가 없는 것처럼 취급하게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비록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라거를 후려치고, ‘사워 비어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라며 오만한 거드름을 피웠다.



웃긴 건 그렇다고 내가 사워 비어 마스터급은 절대 아니라는 거다. 사워 비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그 안엔 또 어떤 종류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아주 다양한 종류를 맛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저 몇 번 맛보고 맛을 즐길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렇게나 쉽게 밥맛이 된다. 사실 비단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무언가를 먼저 알게 될 때나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각할 때 오만해진다. 여기서 너보다 먼저 훨씬 많이 아는 내가 너를 가르쳐주겠다는 계몽 의식으로 흘러가면 걷잡을 수 없이 재수 없어진다. 이렇게나 밥맛이 되기 쉽다니, 어쩌면 인간은 태초부터 오만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재수 없지 않은 애호가가 될 수 있는가? 답을 찾기 위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애호가를 떠올려 본다. 집 한가득 인형을 수집해 놓고, 제작진에게 하나씩 설명하면서 행복해하는 장면에서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답을 찾을 수 있다. 나와 취향이 다른 사람을 평가할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인형을, 맥주를 하나라도 더 사랑해 주는 것. (너무 당연해서 김이 샌 것을 안다.)



사랑하는 방식은 다양할 거다. 더 많은 종류의 사워 비어를 섭렵할 수도, 사워 비어의 역사를 공부할 수도, 이렇게 사워 비어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게 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세상에 이런 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분들은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영업하려고 하지 않고 인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보인다. 그저 인형 하나하나가 주는 즐거움에 취해있고, 그 즐거움도 거침없이 숨김없이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지난날에 대해 회개하며 그분들을 롤 모델로 삼아, 좋아하는 맥주에 대해서 한 바닥... 글을 썼다. (사실 다양한 사워 비어를 섭렵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 대신 가성비 넘치는 글쓰기를 택했다.)



제일 좋아하고 자주 마시는 사워비어인 서울집시의 ‘레츠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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