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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Nov 28. 2023

언젠가는 정직하게 일하길

먹 만드는 장인을 보고 든 일에 대한 생각

요즘 사람들을 만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먹 만드는 장인의 영상이 인상 깊었다며 언급하곤 한다. 우선, 먹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출처: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

    10일 동안 나무를 땐다 (송진이 많은 소나무의 중심부와 뿌리만 땔감으로 쓰기 때문에 나무를 하나하나 손봐야 한다).

    가마에 들어가 그을음을 솔로 채취한다.  

    두 번 체에 걸러 미세한 그을음만을 남긴다.  

    소가죽과 뼈를 고아서 아교를 만든다.  

    그을음과 아교를 손으로 반죽하고, 작은 덩이로 나누어, 또 반죽하고는 틀에 넣어 모양을 잡는다.   

    7일간 먹의 수분을 날리기 위해 1차 건조한다.  

    2차로 한 달 이상 건조한다.  

    그리고 곶감처럼 공중에 매달아 1년 이상 건조한다.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수련처럼 보이기도 했다. 매 단계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먹장의 모습과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해오는 모습에 전율이 일었다. 침대에서 옆으로 누운 채로 이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다 보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정직하게 일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정직의 개념부터 정리하겠다.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는 포장하는 일을 심적으로 어려워하고 내가 ‘우리 상품을 봐주세요!’ 외치지 않아도 알아서 소비자가 찾아주길 원하는 거다. 자본주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욕심이다. 


우스운 것은 나는 지금 일을 시작할 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실제로 2년 가까이 일하면서 팔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감각을 키워오기도 했고, 2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꽤 자신 있게 그 감각을 활용하며 일하고 있다. 


당시 내가 그런 포부를 가졌던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비영리 쪽에서 사무직 일을 해왔기 때문에 ‘나는 시장에서 안 팔린다. 누구든 바로 나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감 섞인 콤플렉스가 있었다. 이런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파는 감각’이 절실했고, 지금의 일을 하게 됐다. 


그놈의 ‘파는 감각'을 얻은 지금, 회의를 느낀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 자체는 여전히 정말 좋고 재밌고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콘텐츠가 팔리게끔 포장하는 일을 할 때마다 주춤하고 그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이 감각을 조금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 콘텐츠의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않지만, 잘 팔렸을 때의 기분도 참 복잡하다. 


돌고 돌아, 나는 파는 것보다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래서는 영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도망쳐서 갑자기 먹장 밑에 들어가 수련을 받을 수도 없고, 숲에 들어가 자연인이 될 수도 없다(엄밀히 말하면 이들도 자본주의 시장 안에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먹장에서 시작한 일에 대한 생각이 이 질문에 도달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뾰족한 대안을 모르겠다. 역시 미래는 생각할수록 불행해진다. 대안을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기 때문에 지금은 그저 현재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파는 감각'에 이물감을 느끼면서도 지금 하는 일이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있기에 당분간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잊지 말 것. 나에게 주의시키기 위해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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