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에 한 번 수제 맥주를 루틴처럼 마시러 가고, 8월부터 매달 2~3개의 페스티벌이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있다. 반면, 약속은 매달 1개 정도이고 그마저도 오랜 친구들을 주로 만난다. '원래 활발하게 사람을 만나고 다니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는 의문이 들어 요즘 내 우선순위인 맥주와 락과 비교해 보며 그 이유를 짚어보려고 한다.
우선, 맥주와 락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새로운 것에도 열려있을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장벽은 큰데, 이 두 개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자주 가는 맥주 가게는 탭리스트를 온라인으로 미리 볼 수 있는데, 생각날 때마다 체크하면서 처음 보는 맥주가 들어오면 마시러 간다. 그렇지만 종종 내 취향과 안 맞는 맥주를 만날 때도 있다. 가령, 피나콜라다 같은 맛의 맥주는 엄청나게 불호였는데, 그럼에도 그 실패 경험이 꽤나 재밌었다. 락 밴드도 라인업에서 처음 알게 된 밴드여도 큰 경계심 없이 ‘어쨌든 재밌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관중석으로 향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람 만나는 것과 달리 상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남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한 편이다. 쿨해 보이지 않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다. 먼발치에서 남몰래 선망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먼저 만나자는 제안을 선뜻 못 한다. 그래서 진짜 만나고 싶어서 “연락할게요!”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연락하지 못 한 인연이 참 많다.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합니다.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어요.
요즈음 내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람을 더더욱 만나지 않았다. 이미 서로의 약점을 봐온 오랜 친구들과 만나는 건 부담되지 않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부터 알게 된 친구들 앞에 마주 앉는 건 조금 부담됐다. 회피다, 회피. 지금 내가 맘에 안 드는 이유가 너무 많긴 한데, 그것까진 여기서 밝히지 않으련다.
꼭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상태에 만족감을 느낀다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나는 내가 점점 고여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게 문제이다. 실존하는 사람을 만나 생각을 나누지 않고 내 머릿속에서만 생각을 굴리고 그대로 그 생각은 뇌에서 썩어간다. 그 썩어있는 생각을 다시 또 굴리며 같은 생각만 반복된다. 이제 생각이 아니라 고집이 되고 편견이 되고, 동맥경화처럼 편견으로 단단해지고 있음을 순간순간 느낀다.
내가 혼자 맥주를 마시러 다니고 밴드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멋지다"고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확고한 취향이 있는 어른 여성으로 나를 봐주는듯 하지만, 그때마다 속으로 “사실 하나도 멋지진 않습니다”라고 속삭인다. 그냥… 같이 갈 사람이 없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 데다가 수제맥주나 공연은 취향을 많이 타는 활동이다. “너 이거 좋아해?” “이거 혹시 같이 해볼래?”라고 제안하며 설득할 에너지가 없어서 결국 혼자 가는 걸 택한다. (나에게 먼저 뭘 해보자고 제안해 주던 친구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나를 너무 외톨이처럼 볼까 봐 달아놓는 설명: 친구와 가기도 한다. 매번 혼자 다니는 건 아니다!
맥주와 락을 좋아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맥주는 후각과 미각을 , 락은 시각과 청각을 총동원해서 그냥 즐기면 된다. 근데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무래도 대화하면서도 머리를 써야 한다. 무슨 말을 하지? 이 말을 하면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와 같은 생각을 머리 한켠에서 계속하면서 대화하다 보니, 맥주와 락만큼 ‘즐긴다'고 할 수는 없다. 오감만 쓰기도 바쁜데, 오감과 머리를 동시에 쓰는 것이 좀 버거운 상태였던 것 같다.
(왜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는가. 암만 생각해도 회사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 아무래도 생각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