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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Apr 08. 2023

이번엔 고독에 성공했다

두 번째 나 홀로 치앙마이 여행

전편에 이어서

https://brunch.co.kr/@jam-in/56



2023년 2월, 다시 치앙마이에 혼자 갔다. 고독한 미식가를 꿈꿨지만, 처참히 실패했던 지난 여행에도 불구하고 혼자 간 이유는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였다. 연말도 아니고, 여름휴가철도 아닌 애매모호한 시기에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친구도 없었고, 가족과 가면 충분히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또 치앙마이냐,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 장소로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한참 가지 못하면서 여행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체력인 ‘여행력'이 떨어진 상태였고, 일 때문에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한 번 가본 곳이면서 가격 부담도 너무 크지 않은 치앙마이가 딱 적합한 곳이었다. 


여기서 궁금할 것이다. 지난 여행에선 보수적인 가족에게 나 혼자 여행 간다는 걸 숨기려고 온갖 거짓말을 했는데, 이번 여행에선 어떻게 했는지. 놀랍게도… 엄마는 내가 혼자 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 치밀한 줄 알았던 나의 전략이 정말 망했던 거였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도 혼자 간다는 것에 어떠한 반대도 없었다. 


그렇게 떠난 두 번째 치앙마이 여행, 이번에는 고독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려 이 글을 쓴다. 사람에 질려 떠났던 첫 번째와는 달리, 이번에는 일에 질려 떠났는데, 우선, 성과, 지표, 프로젝트 등 나를 지치게 했던 일로부터 멀어질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반응하기와 고민하기를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치앙마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세운 몇 가지 원칙.  


     회사 슬랙과 메일 알림을 꺼둘 것    

     천천히 걷기   

     매일 카페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질 것   


슬랙이나 메일을 보는 대신 노트를 꺼내 순간순간의 기분과 장면을 적었다. 가령, 우연히 들어간 카페의 옆에 있는 인공 연못에서 모기떼를 발견한 순간엔 ‘어, 내 옆에 모기 개 많아.'라고 썼다. 옆에 친구가 있었더라면 육성으로 할 말을 대신 노트에 적은 셈이다. 고독에 실패했던 첫 번째 여행에서는 혼자 계속 책을 읽으며 내 감상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면, 두 번째 여행에서는 표현한 거다. 꽤 괜찮아서 돌아다니는 내내 노트를 끼고 다녔다. 


늘 빠르게 걷는 습관이 있어서 두 번째 원칙은 쉽지 않았는데, 천천히 걷기 위해 일부러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았다. 몇 시까지 어디에 가야 한다는 목표 의식 없이 걷다 보니, 거리를 이리저리 구경했고, 갈 계획에 없던 가게에 들어갔다. 한 번은 숙소에 가는 길에 코코넛 풀빵을 파는 작은 가게를 발견해서 사 먹었는데, 맛은 솔직히 내 취향에 안 맞았다. 그럼에도,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으로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빨리 목적지를 향해 달렸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풀빵!


카페에서 멍 때리기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두 번째 날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성공적인 멍 때리기 경험을 한 덕분이다. 힘들게 산을 내려오고 들어간 카페에서 어쿠스틱 기타 공연을 하고 있었고, 노래를 듣다가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바깥을 보며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공간에 충실하게 느끼는 경험이 좋았던 터라, 잠깐 앉아 있으려고 했던 카페에서 2시간쯤을 보냈다. 그다음부터는 카페에 가서 ‘다음에 어디 가지'를 휴대폰으로 찾아보는 행위에 너무 몰두해 있는 것 같을 때는 ‘잠깐, 잠깐’ 제동을 걸며 카페를 둘러보거나 턱을 괸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여전히 감상을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롭긴 했지만, 처절히 외롭진 않았다. 그냥 좋았다. 여유를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고, 떠나기로 했던 내 선택에 따봉을 날리고 싶었다. 떠나기 전에는 ‘이번엔 너무 외로우면 동행을 구해서 잠깐 놀기도 하고 그래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만족스러워서 하지 않았다. 이번엔, 고독에 성공했다.

노트를 보면 '똥을 싸네'가 보일 것이다. 사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어떤 강아지가 내 앞에서 똥을 푸지게 싸는 것을 목격하고는 적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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