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나 홀로 치앙마이 여행
전편에 이어서
https://brunch.co.kr/@jam-in/56
2023년 2월, 다시 치앙마이에 혼자 갔다. 고독한 미식가를 꿈꿨지만, 처참히 실패했던 지난 여행에도 불구하고 혼자 간 이유는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였다. 연말도 아니고, 여름휴가철도 아닌 애매모호한 시기에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친구도 없었고, 가족과 가면 충분히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또 치앙마이냐,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 장소로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한참 가지 못하면서 여행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체력인 ‘여행력'이 떨어진 상태였고, 일 때문에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한 번 가본 곳이면서 가격 부담도 너무 크지 않은 치앙마이가 딱 적합한 곳이었다.
여기서 궁금할 것이다. 지난 여행에선 보수적인 가족에게 나 혼자 여행 간다는 걸 숨기려고 온갖 거짓말을 했는데, 이번 여행에선 어떻게 했는지. 놀랍게도… 엄마는 내가 혼자 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 치밀한 줄 알았던 나의 전략이 정말 망했던 거였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도 혼자 간다는 것에 어떠한 반대도 없었다.
그렇게 떠난 두 번째 치앙마이 여행, 이번에는 고독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려 이 글을 쓴다. 사람에 질려 떠났던 첫 번째와는 달리, 이번에는 일에 질려 떠났는데, 우선, 성과, 지표, 프로젝트 등 나를 지치게 했던 일로부터 멀어질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반응하기와 고민하기를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치앙마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세운 몇 가지 원칙.
회사 슬랙과 메일 알림을 꺼둘 것
천천히 걷기
매일 카페에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질 것
슬랙이나 메일을 보는 대신 노트를 꺼내 순간순간의 기분과 장면을 적었다. 가령, 우연히 들어간 카페의 옆에 있는 인공 연못에서 모기떼를 발견한 순간엔 ‘어, 내 옆에 모기 개 많아.'라고 썼다. 옆에 친구가 있었더라면 육성으로 할 말을 대신 노트에 적은 셈이다. 고독에 실패했던 첫 번째 여행에서는 혼자 계속 책을 읽으며 내 감상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면, 두 번째 여행에서는 표현한 거다. 꽤 괜찮아서 돌아다니는 내내 노트를 끼고 다녔다.
늘 빠르게 걷는 습관이 있어서 두 번째 원칙은 쉽지 않았는데, 천천히 걷기 위해 일부러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았다. 몇 시까지 어디에 가야 한다는 목표 의식 없이 걷다 보니, 거리를 이리저리 구경했고, 갈 계획에 없던 가게에 들어갔다. 한 번은 숙소에 가는 길에 코코넛 풀빵을 파는 작은 가게를 발견해서 사 먹었는데, 맛은 솔직히 내 취향에 안 맞았다. 그럼에도,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으로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빨리 목적지를 향해 달렸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풀빵!
카페에서 멍 때리기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두 번째 날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성공적인 멍 때리기 경험을 한 덕분이다. 힘들게 산을 내려오고 들어간 카페에서 어쿠스틱 기타 공연을 하고 있었고, 노래를 듣다가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바깥을 보며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공간에 충실하게 느끼는 경험이 좋았던 터라, 잠깐 앉아 있으려고 했던 카페에서 2시간쯤을 보냈다. 그다음부터는 카페에 가서 ‘다음에 어디 가지'를 휴대폰으로 찾아보는 행위에 너무 몰두해 있는 것 같을 때는 ‘잠깐, 잠깐’ 제동을 걸며 카페를 둘러보거나 턱을 괸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여전히 감상을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롭긴 했지만, 처절히 외롭진 않았다. 그냥 좋았다. 여유를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고, 떠나기로 했던 내 선택에 따봉을 날리고 싶었다. 떠나기 전에는 ‘이번엔 너무 외로우면 동행을 구해서 잠깐 놀기도 하고 그래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만족스러워서 하지 않았다. 이번엔, 고독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