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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Apr 02. 2023

치앙마이의 고독에 실패한 미식가

나 홀로 여행에 환상을 갖고 있나요?

* 2021년, 버즈샵의 음&식 콘텐츠 플랫폼 <업테이블>에 기고한 글의 초고를 다듬어 재업로드 합니다.



오랫동안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왠지 혼자 여행할 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혼자 잘 놀러 다니고, 밥도 잘 먹어서 혼자 하는 여행도 좋아하리라는 나름 근거 있는 확신도 있었다. 그리고 2019년 8월, 그 로망을 치앙마이에서 이뤄보기로 했다.


그런데 집이 보수적이라 여자 혼자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여행을 가기 위한 전략을 짜야만 했다. 우선 친구랑 여행을 갈 거라는 거짓말부터 하고, 아래의 전략대로 움직였다. 나 같은 분이 있다면, 참고하길 바라며 공유한다.                    


1. 여행 가기 전에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많이 안 찍을 거라는 밑밥을 깐다. 더워서 꾸미고 다니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둘이 찍은 사진이 왜 없냐며 의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은 꼭 있어야 한다.

2. 얼마 전에 동남아로 여행을 갔다 온 친구의 사진을 받는다: 나중에 가족들에게 여행 사진을 보여줄 때 중간에 친구 사진이 있어야 의심을 덜 받는다. 

3. 식당에 가면 구글맵의 후기 사진 중 일행이 있어 보이는 (팔이나 손이 살짝 보이는) 사진을 다운로드한다 : 여행 중간중간 뭐 먹었다고 자랑할 때 그 사진을 보낸다.

4. 셀카용 삼각대를 가져가서 전신 샷을 몇 장 찍어온다: 누가 찍어준 듯한 사진이 없으면 아무래도 의심받을 테니까 2~3장은 찍어야 한다.

p.s. 이 모든 게 귀찮게 느껴진다면,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싸움, 특히나 가족과의 말싸움에는 더더욱 자신 없기 때문에 최대한 갈등을 피하고자 위의 전략을 고수하기로 했다. 진흙탕 싸움이 될 게 뻔한 정면승부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좋다. 집안의 평화와 나만의 시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면, 이 정도의 귀찮음쯤이야!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가서 맛보게 될 태국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에 설레하며 치앙마이로 날아갔다. 

혼자여도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부지런히 다녔다. 가게를 찾아가면서 항상 길을 헤맸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직진만 하는 날 말려줄 사람이 없어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 가게에 도착하곤 했다. 땀범벅이 된 채로 더듬더듬 대표 메뉴로 추정되는 음식을 주문하고, 구글맵에 들어가 나의 거짓말에 쓰일 사진을 저장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그렇게 맛본 족발 덮밥, 카오쏘이, 똠얌꿍, 팟타이 등의 태국 음식은 오면서 흘린 땀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로이!*

* 아로이(สวาทุ) : 맛있다는 의미의 태국어


그러나 맛있는 걸 먹었을 때 나오는 특유의 흡족한 미소를 짓지 못했다. 함께 호들갑 떨며 먹을 친구가 없어서 못내 아쉬웠달까. 첫 입을 먹고 감탄사와 함께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마주 볼 사람이 없어서 영 허전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진을 찍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송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2% 부족한 맛이었다. 그렇다고 옆 테이블에 온 여행객에게 인사를 건네며 스몰토크를 시작할 용기는 없어서 조용히 맛있다는 혼잣말을 하면서 먹었다.


혼자 뭔가를 먹을 때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핸드폰을 보거나 전자책을 읽는 편인데, 치앙마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삼시 세끼를 혼자 먹으며 계속해서 뭔가를 보거나 읽게 됐고, 결국 뇌의 과부하가 왔다. 밥을 먹고 나면 일하다 온 사람처럼 눈이 뻑뻑하고 머리가 아팠다. 종일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끊임없이 들어오니 그럴 수밖에. 


집에 거짓말까지 하고 왔는데, 이렇게 허전하고 피곤하다니… 실망감이 여간 큰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이제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편히 쉴 수도 있다는 사실에 홀가분하기까지 했으니. 실망감과 함께 혼자만 기억하는 맛도 한 아름 들고 왔는데, 종종 그 기억을 꺼내 볼 때도 외로움이 밀려온다. ‘우리 그때 발밑에 비둘기가 돌아다니던 식당에서 카오쏘이 먹은 거 기억나?’하며 같이 웃을 사람도 없고, ‘아, 그때 먹은 똠얌꿍만큼 맛있는 집을 못 찾았어.’라며 고개를 함께 저을 사람도 없다. 고독한 미식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혼자 여행을 간다는 건 낯선 곳에서 홀로 종일 새로운 맛을 보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맛을 느끼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맛있는 음식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던 여행이었다. 사실은 그때 사람이 싫어서, 온전히 혼자만 있고 싶어서 도망치듯 떠났다. 하지만 결국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하다. 누군가와 같은 맛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기억을 돌아보는 행위가 이토록 소중한 거였구나. 여행 마지막 날, 친구들에게 선물과 함께 줄 엽서에 이렇게 적었다. “혼자 여행하는 거 별로야… 다음엔 우리 꼭 같이 여행 가자… 알았지? 꼭이야!”


참, 그리고 가족들에게 혼자 여행한 사실을 아직 들키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나름 반전이 있었다.

https://brunch.co.kr/@jam-in/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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