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녀온 경기인디뮤직페스티벌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여성 관객들이 무대의 사이드에서 삼삼오오 작게 모여 노를 젓고, 기차놀이를 하고, 동대문 놀이를 하고, 앉아서 서로의 손바닥을 치고, 블루스를 추고 있었다. 나도 사이드에서 혼자 헤드뱅잉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두 분이 오셔서 어깨동무를 해서 셋이 박자에 맞춰 헤드뱅잉을 했고, 무리를 못 찾아 두리번거리는 여자분을 발견하곤 달려가 옆에 무리에 “끼워줘요!”라며 같이 들어가 신나게 놀기도 했다.
이건 분명 내가 알고 있고 경험했던 ‘과도한 락놀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센터에서 벌어지는, 상대적으로 거대하고 과격하기도 한 슬램에서 느껴지는 흥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슬램이란, 원(일명 써클 핏)을 벌렸다가 음악 하이라이트 부분에 맞춰 가운데로 뛰어가며 서로의 몸을 부딪치는 놀이이다. 안전을 위한 나름의 질서가 있는데, 그럼에도 과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관객이 지나치게 흥분해서 있는 힘껏 부딪히는 바람에 부상을 입기도 하고, 써클 핏이 커져서 사람이 너무 많아졌는데 누군가 넘어져 우루루 같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서로의 몸을 부딪치는 순간을 틈타 성추행이 벌어지기도 한다.
굉장히 위험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다 같이 안전을 신경 써서만 하면 음악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놀이 문화라 나도 락 페스티벌에 갈 때마다 센터 쪽 슬램에 참여하곤 했다. 다만, 간혹 다들 흥분해서 과격해지는 것 같을 때면 핏에서 빠져나오는데, 가만히 서서 무대를 보다 보면 과열된 핏이 자꾸 커지면서 서 있는 관객들을 자꾸만 자꾸만 밀어낸다. 그렇게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샌가 사이드로 밀려나 있다. 어떤 공연에서도 그렇게 밀려나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슬램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이드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밀쳐질 때마다 내가 했던 최대의 액션은 찌푸린 표정으로 거대해진 핏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또 밀쳐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곤 ‘아, 좀!’ 불평하면서 무대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사이드에서 까르륵 웃으며 놀고 있는 거다. 센터의 슬램과는 다르게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기존의 ‘과도한 락놀이' 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이드에서 이런 광경이 펼쳐친 데에는 각자가 경험한 기존의 락놀이에서 느낀 불편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내 경험을 되짚어 보면, 물리적으로 나보다 크고 힘이 센 남자들과 부딪히며 ‘헉'하고 위협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고, 거칠게 몰려오는 무리에 신발이 벗겨지거나 몇 번 넘어진 적이 있다. 다 같이 엄청나게 흥분한 슬램만이 주는 맛이 있긴 하지만, 이 경험들이 약간의 트라우마가 됐는지 과격한 슬램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됐다. 그래서 한동안 슬램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10명 이내의 작은 규모로 모여 ‘콩!’하고 부딪히는 사이드의 슬램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여자들이라고 칭했지만, 사실 사이드엔 아주 다양한 정체성의 관객들이 있다. 아동, 중년, 노년, 장애인, 부상을 입은 사람처럼 물리적인 이유로 슬램에 참여하기 어려운 관객, 과격해 보이는 슬램에 참여하기 싫은 관객, 무대 감상에 집중하고 싶은 관객 등. 어쩌면 이렇게 사이드에서 작고 평화롭게 노는 이 문화가 조금 더 다양한 사람과 함께 놀 수 있는 새로운 락놀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밀려나는 불쾌한 경험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도 해맑게 웃으며 놀다 왔다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이드에서 밀려난 여자들이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 그리고 그 문화가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점이 마음을 좀 벅차게 만들었다. 센터에서 자꾸만 밀려난다는 것이, 그리고 사이드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몰려있다는 것이 사회의 어떤 부분과 닮아있기에, 이 새로운 놀이 문화가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이상적인 대안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서로를 끌어주면서, 안아 주면서, 약자와 함께 가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하호호 지내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