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 돌아가는 이유의 8할은 먹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미역국 한 솥은 끓여 먹는 것으로 해외 생활의 피로를 풀고, 돼지갈비에 냉면은 필수. 일본에서는 잘 먹지 못했던 생선찌개와 갈비찜 각종 반찬. 도쿄에서는 맛있는 곳을 찾지 못해 먹을 때마다 헛헛했던 짜장면과 탕수육, 각종 떡 등등. 내가 먹고 싶었던 것뿐만 아니라, 동생은 "언니 오면 같이 먹자"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언니를 핑계로 엄마가 미뤄왔던 외식 메뉴들을 줄줄이 리스트에 올렸다. 엄마 나, 동생 세명이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하니 냉장고에 붙여 놓은 화이트보드가 빽빽했다. "한국에 먹으러 가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말이 맞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좋은 이유가 또 있을까?
전 세계를 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음식은 세계 어디 음식과 비교해도 정말로 다양하고 맛있다는 것이다. 하나를 먹으면 또 하나를 먹고 싶어지는 그 마음을 사람들은 단짠단짠이라고 하였다.(응?) 아무튼 한식 최고.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먹는 음식을 이토록 세밀히 나누고 공감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싶다. 내 기분이 어떤지 오늘 날씨가 어떤지에 따라서 뭘 먹을지 같이 고민하고 같이 맛있게 공감하며 먹는 것은 그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는 다른, 마음의 허기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음식에는 그 문화와 정서가 정말 깊게 배어 있다는 것을 외국에 살다 보면 더 많이 느낀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부쳐먹고 싶거나 뜨끈한 수제비 한 사발 먹고 싶어지는 그 마음, 숙취로 쓰린 속을 국물로 쑥 내려버리고 싶은 그 마음. 먹을 수 없더라도 "무슨 말인지 알지?!"하고 한국 친구들과 카톡으로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정서는 아무리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이라도 알기가 힘들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과 부대껴보고 그 음식이 체화되어야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음식은 체화된 생활 습관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것 같은 알베르토 씨가 이탈리아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해 느끼는 정서를 "김치에 물을 부어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난 이탈리아에서 처음 에스프레소를 맛 본 후 그 맛에 너무 감탄해서 이후로 혼자 살면서 모카포트에만 커피를 끓여마신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을 부어서 아메리카노로도 마신다. 하지만 나는 아메리카노를 그렇게 충격적인 음식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음식을 좋아하고 먹는 것과 그 음식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은 또 조금 다른 차원인 것이다.
그래서 그 정서를 아는 사람들과는 먹는 이야기만 해도 즐겁다. 딱 공감 가는 얘기가 나오면 "크으~좋지"하는
추임새가 나온다. 일본에 살면서 내가 그리웠던 것은 혼자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어도 채울 수 없었던 음식에 대한 정서와 공감이 아닌가 싶다.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을 뭐 먹을지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엄마와 나, 동생은 진정한 먹보라 할 수 있다. 항시 먹으면서도 다음에 뭐 먹을지 생각해 둔다. 사실 메뉴 선정이라는 게 아시다시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 반찬이 얼마나 남았는지, 냉장고에 무슨 재료가 있는지, 새로 사야 하는 재료가 비싼지,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은지, 날씨나 기분과 맞아떨어지는지, 가족 중에 누구 하나 못 먹는 음식이 들어가는지 등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니다. 엄마랑 뭐 먹을지 한 창 얘기하다가 "아, 그게 좋겠다" 하고 공감에 다다르는 순간, 만들어 먹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지를 선정할 때 더 설레는 기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
먹을 걸 고민하고 만들고 먹었던 시간이 8할이었던 내 한국 생활. 오늘은 혼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쿄에서 뜨끈한 국물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