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딸내미투어
"아 엄마 나 죽겠다~"
"내가 니 그럴줄 알았다"
못난 딸래미는 그렇게 전날 하노이 맥주투어 1, 2, 3차를 거쳐 숙취에 찌든 모습으로 엄마를 하노이 공항에서 맞이했다.
엄마가 내 한 달 예정의 베트남 여행에 일주일간의 일정으로 합류했다. 일본에 사는 딸과 한국에 사는 엄마는 베트남의 하노이 공항에서 다시 만났다. 이렇게 적으니까 무슨 전세계를 누비는 쿨한 모녀 같지만, 생각해보면 엄마와 일본 이외에의 나라에 해외여행을 같이 온 적은 처음이었다. 엄마는 동생도 같이 오길 바랬지만 일 때문에 힘들었고, 아빠는 고려 사항에 들어있지 않았던 듯 하다.
사실 베트남 여행을 같이 하기로 확정하기 전까지 오네 가네 마네 하면서 서로 망설이고 갈등도 있었다. 여행을 못 갈 이유야 찾으려고 하면 100가진들 못찾겠는가. 결국엔 이렇게 마음 먹고 시간 맞을 때 아니면 또 언제 둘이 베트남을 가보겠나 하는 생각에 둘이 같이 여행해보자고 마음을 먹었고, 나는 우리 모녀를 위해 감히 퍼펙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행계획을 짜기로 했다.
나는 엄마와 최대한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가도 쓰고, 나름대로 여행 강도의 강약중강약을 조절하고, 도시와 숙소 분위기도 여러가지로 바꿔가면서 즐길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하지만 엄마가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패키지여행 밖에 해본 적 없었던 엄마는 일단 혼자서 한국 공항에 새벽 첫 비행기 시간까지 늦지 않게 맞춰가고, 외국 공항에서 무사히 통과하는 것 자체가 겁이났던 듯 하다.
나야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특히 코로나 시국에 다른 나라 입국전에 주의사항 찾아보고 준비하는 것이 나도 힘든데 엄마는 더 그렇겠구나 싶어서 최대한 상세하게 알아보고 알려드렸다. 그래도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엄마는 처음으로 혼자 해외 여행 비행기 탑승을 해냈다.
엄마가 오는 날부터 나도 호스텔 다인실을 떠나 나름 호화로운 숙박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첫 날은 무리하지 않고 하노이 올드타운을 돌아보았다. 일단 내가 가 본적은 없지만 평점이 높은 닭고기 쌀국수 집에 가서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호안끼엠 호수에 가서 호수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구경을 하고 여유를 즐겼다.
엄마는 참 사람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아무에게나 말도 서슴없이 건다.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긴한데 해외에 나오면 묘한 해방감과 함께 더 과감해지는 것 같다.
엄마가 생각보다도 더 땀을 많이 흘리고 더워해서 다른 베트남 카페와는 달리 어딜 가도 에어컨 빵빵한 스타벅스에 모시고 갔는데, 키가 크고 귀엽게 생인 남자 스태프가 있었다.
둘 다 베트남에서 흔지 않은 비쥬얼이라며 소근소근대고 있었는데, 엄마가 그 스태프가 음료를 가져다 주러 왔을 때 "비쥬얼 짱!!"이라고 양손 엄지까지 치켜세우며 콩글리쉬와 한국어 합성어로 급발진을 하는 바람에 스태프가 벙쪄있었다.
"우리 엄마가 당신 잘생겼대요"
나만 빵 터져서 영어로 당신보고 잘생겼다고 한거라고 말해주니 웃으며 화답해줬다. 이후로도 절 구경을 갔다가 스친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인들에게 "오! 뷰티풀 뷰티풀"을 외치며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 사람들과 교류하는 엄마를 보니 엄마가 영어만 좀 할 줄 알았어도 나보다 더 여행을 잘 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 시대에 나처럼 자랐으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엄마와 여행을 하는 중에 순간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방랑벽이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날은 런하베이 투어를 가기 위해 깟바섬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오후 2시에 예약된 버스 이동전에 오전시간을 이용해 오토바이 시티 투어 신청을 해 놨다. 오늘이 하노이 마지막인 엄마에게 어제 못본 하노이 관광명소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전날 비행기를 타야해서 새벽 4시 기상을 한데 이어, 아침 8시투어를 위해 또 아침 6시 반에 기상해야 했다.
기상 시간 때문에 피곤해 하셨지만 투어는 완전 만족해 하셨다. 특히 한국어를 전공하는 지안이라는 여자 대학생 투어 가이드와 친해져서 지금도 카톡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보통 현지 투어는 영어로 진행이 되서 내가 통역을 않으면 엄마가 소외될까봐 걱정했는데, 지안씨가 한국어를 좀 할 줄 알아서 엄마를 잘 케어해줬다.
둘은 여행 내내 카톡을 주고 받았고 나는 엄마에게 어린 학생이라 귀찮아도 거절 못해서 그런 걸 수 있으니 그만 들이대는게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녀가 한국어로 카톡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우리 여행을 때때로 공유했다. 내가 거의 베트남 딸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마는 지안씨를 귀여워했다.
20대 때 여행 다닐 때는 현지 가이드나 투어를 돈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이후에 좋은 경험들을 하게 되면서 특히 혼자 여행 갈 때는 각종 투어를 신청해 다닌다. 잘 고르기만 하면 여행지를 훨씬 효율적으로 돌아 볼 수 있고, 다른 여행자들, 현지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생기고, 지식도 깊어진다.
특히 이 투어에서 좋았던 것은 그 유명한 기찻길에 데려가 준 것이었다. 다른 날에 구글에 표시 된 기찻길로 찾아간 적이 있는데, 경찰이 못 들어가게 해서 볼 수가 없었다. 영어로 이유를 설명을 해주는 것도 아니라서 나를 포함해 여러 여행객들이 영문도 모른채 바로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투어 때 물어보니 여행자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철길 주요 지역은 얼마 전부터 안전상의 이유로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현지 가이드들만이 알고 있는 지역이 아니면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가보니 우리와 다른 투어 팀 두 팀 밖에 없었고, 텅빈 길에서 사진찍기도 너무 좋았다. 기찻길에서 사진이 찍고 싶은 분들은 아래 투어를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클룩 하노이 조인/프라이빗 오토바이 투어
시티투어를 끝내고 1시간 남은 시간에는 깨알같이 발 마사지까지 받고 깟바섬으로 이동했다. 숙소는 건물이나 방도 너무 이뻤고, 스태프도 친절했다. 1층에는 입소문난 레스토랑 바도 있고, 칵테일 쇼도 해줘서 저녁시간은 멀리 나가지 않고 편하게 보냈다.
이래저래 섬까지 이동하는데 3시간 남짓 걸려서 피곤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난 너무 뿌듯했다. 그리고 내일 일정을 엄마에게 브리핑했는데,
"8시 출발이면 우리 또 6시 반에는 일어나야 되네?!"
그렇다. 내일은 본격 런하베이 종알 투어가 있는 날. 사진 찍으려면 화장하고 머리도 해야하는데, 날씨가 더운 탓도 있어서 뭐든지 일찍 시작하는 베트남 투어에 참여하려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야 됐다. 그리고 난 아직 엄마한테 이야기 하지 못했다. 내일 모레 다낭가는 비행기에 타려면 또 아침 6시에 일어나야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