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과학]

"Don't Look Up"을 통해 본 과학자의 역할에 대하여

by 어린아저씨

들어가는 글

: 영화와 과학은 정재승 교수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를 포함하여 많이 다루어진, 어떻게 보면 좀 지루한 떡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얘기할 거리가 생겨나는 스테디 토픽인 것 같습니다. 저도 여기에 편승하여, 영화를 통해 얻은 과학에 대한 영감이 있다면 풀어내 보려고 합니다. 다만, 너무 뻔하지 않게 때로는 과학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영화에서도 어떻게든 끄집어내서 우길 예정입니다. 우길 때는 읽기에 주의를 요합니다.


"Don't Look Up".

이 영화의 완성도나 호불호, 재미를 떠나 저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꽤나 많은 시각에서 영화를 뜯어볼 수 있다는 점인 듯합니다. 실제로 리뷰를 찾아보면 어떤 사람은 미디어적 시각에서, 또 어떤 사람은 욕망의 시각에서, 또 일부는 집단지성 혹은 반지성주의의 시각에서 이 영화를 현실에 대입하여 분석하곤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보다 보니 과학자의 시각(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으로 이 영화를 뜯어보게 되었고 그 방향에서 과학이 어떻게 믿음을 줄 수 있는지, 또 과학자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 깊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위 글에서는 그 부분에 집중하여 글을 풀어볼 생각입니다.


먼저 영화 소개를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영화는 두 과학자, 박사 수료자(케이트 디비아스키)와 그의 지도교수(랜달 민디)가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면서 시작합니다. 그 "사실"은 에베레스트 산 크기 수준의 혜성이 6개월 뒤면 지구에 떨어지고 결국에는 지구의 모든 종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발견한 시점부터 NASA에 보고하고 대통령 귀에까지 들어가지만, 진짜 전문가인 NASA의 지구방위합동본부 박사(실제로 있는 본부라고 합니다!)를 제외하고는 전부 "사실"을 믿지 않거나, "사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 선동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코미디/재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계속 "사실"에 큰따옴표를 친 이유는, 사실이라는 것이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과학에서의 사실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과학자들을 사실을 발견하는 직업이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공학보다 순수과학에 대한 인식은 더더욱 그러하죠. 영화에서도 대학원생이 거대한 혜성이 "6개월 14일" 후 지구에 충돌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그려지고요.

하지만 저는 과학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다릅니다. 저는 과학이 사실을 "만들어나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스포지만) 혜성이 아주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안 뒤에, 기업의 CEO(피터 이셔웰)도 로봇을 몇 개 만들면 혜성을 부실 수 있고, 혜성을 부시면 국가적 피해를 막으면서도 막대학 이익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애석하게도 사실이 아니었고 결국 지구 멸망!.. 엔딩을 맞게 되지만요..


그렇다면 도대체 대학원생인 케이트가 발견했던 사실과 피터 이셔웰이 발견했던 사실은 무엇이 다른 걸까요? 저는 과학자들의 역할 유/무가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렌달 교수가 미친 듯이 외쳐대던 "Peer Review", 즉 동료평가 말입니다. 케이트가 발견한 사실도 만약 다른 전문가들의 peer review에서 reject이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높은 확률로 혜성은 지구에 안 떨어졌을 겁니다(말장난 같고 이상하겠지만, 핵심은 케이트가 발견한 사실은 동료평가로 인해 진정한 사실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피터 이셔웰이 이 부분을 AI의 단독 확률 알고리즘에 맡기는 것이 아닌 peer review를 빨리 진행해서 accept이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높은 확률로 피터 이셔웰은 시총 1위 기업이 되었을 겁니다. 즉, 과학자들의 역할은 발견된 사실들을 계속 내고 교류하여 검증함으로써 사실을 만드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랜달 교수가 외칩니다 - "PEER REVIEW!!!!!!"

저는 이 대목에서 과학이 어떻게 믿음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중 앞에서 떠드는 과학자/공학자들은 "만들어진" 사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대중 앞에 공개하기 전에 동료들에게 먼저 검증받아 사실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을 외쳐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사람들이 과학은 믿을 수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과학자가 만들어진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과학에 대한 믿음이 충분해지는지는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포지만) 영화에서도 그렇게 사실을 외쳐대지만 결국 세계가 멸망했던 것처럼요. 심지어 혜성이 보여서 위를 올려다보라고("Look Up") 얘기해도 "Don't Look Up"이라는 구호를 만들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선동한다고 이야기하고 믿기까지 하죠. 이 정도 무지성이면 그냥 손가락 빨아야 되는 거 아닌지 한탄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혜성이 정말 눈앞까지 오게 되니 "Don't Look Up"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돌 던지고 떠나버리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만약 당장 눈앞의 보이는 것들을 계속해서 검증해 준다면 말입니다. 작게는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것들부터 크게는 우주적 발견들까지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것이 아닌 믿게끔 한 발짝 한 발짝씩 검증해 주고 신뢰를 준다면, 대중들이 적어도 과학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과학적 사실들이 실제로 맞는다는 것을 계속 경험하다 보면 나중에는 지구 온난화와 같은 당장은 보이지 않는 사실일지라도 대중들이 과학을 지지해 줄 것입니다.

또한 대중과 접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과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과학자들도 분업이 필요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일선에서 연구를 통하고 치열한 의견교환을 통해 사실을 만들어내야 하고, 어떤 과학자들은 그 만들어진 사실을 대중들에게 명확하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 두 이야기, 과학자들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눈앞에 있는 현상이나 물건들의 원리를 계속해서 설명해 주고 검증해 주려는 노력을 한다면 적어도 대중이 과학에 대한 불신의 인식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한다고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망하지 않으려면 인식을 제고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과학을 믿게 만들고 많은 사람이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니깐요.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에게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필요합니다. 즉, 슈퍼스타가 필요합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영화에서도 아리아나 그란데가 SNS에 "Look Up" 한 마디 올린 후, SNS는 난리가 났죠. "Look Up" 캠페인을 하면서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에 많은 사람들이 현장을 찾아오고 대중에게 나름대로 유명해진 과학자 두 명이 적극적으로 알리고 홍보했을 때 비로소 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말에도 신뢰성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사람을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을 검증하지도 않고 믿어버리는 겁니다! 빨리 전 세계에 슈퍼 인플루언서 과학자들이 많이 생겨 많은 사람들이 "Look Up"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P.S 이 영화에서 사실 제가 가장 슬펐던 것은 발견은 대학원생이 했는데, 공은 대학교수가 다 가져갔다는 점이었습니다(이유야 어찌 됐건...). 모든 대학원생의 권리 향상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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