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5
정말 별 일 없이 살았다. 신랑의 자잘한(금액은 자잘하지 않지만) 물건 구입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아이는 두드러기가 나서 병원에 간 것 말고는 크게 아프지도 않았다. 이렇게 별 일 없어도 되나 할 만큼 별 일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심심하다 못 해 지겹다 할 일상이지만 지난 몇 년 간 난리 환장 파티였던 육아를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다.
나의 생활에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북클럽을 시작한 게 변화라면 변화였다. 그덕에 새벽기상을 할 수 있었다. 아침잠 많은 사람인 나는 해 떠오르는 새벽에 잠이 들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힘든 사람이다. 그래서 시작은 가벼운 마음으로. 새벽마다 줌 독서실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을 확인하고 하는 두 사람의 수고가 새벽에 눈을 뜨게 했다. 저렇게 열심히 눈을 떠서 줌 독서실을 여는데, 그날따라 한 명도 들어오지 않으면 허무하지 않을까? 그 생각이 전부였다. 새벽에 일어나 책 읽는 것과 밤늦게 책 읽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의 요 요상한 성격은 시작한 일에는 흠이 없어야 한다. 일주일에 5번 새벽 독서실에 참여 하겠다 마음 먹었으면 꼭 다 참여 해야 하는 것이다. 중간에 하루라도 빠져서 흠이 생기면 그 다음은 없다. 내 요상한 성격은 그렇다. 그러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의 의지로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3월. 교실에 걸려 있던 일력을 꼭 내가 뜯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교실에 처음 도착한 사람이 나여야 가능한 일이다. 중간에 라이벌이 생겨서 전부다 내가 뜯지는 못했지만(이건 내의지가 아니니 괜찮다), 250일 정도 중 220일 정도를 내가 뜯었다. 그때 그 라이벌이었던 친구는 수능이 끝나고 나에게 ‘독한년’이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는 일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잠에 취해 비몽사몽간에 읽은 것도 안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두시간을 보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 날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날이 또렷한 눈으로 맑은 정신으로 책을 읽었다. 평소에 읽기 어려웠던 책들 소유냐 존재냐, 그리스로마신화, 코스모스 같은 것들을 이 시간에 펴 놓으면 저절로 읽어진다.
왜냐하면 그 새벽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이와 신랑의 잠을 방해할 수 없으니 큰 소리가 나는 활동은 안된다. 아침밥을 먹는 사람이 없으니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불시에 엄마를 찾는 아이가 있어서 새벽운동을 나갈 수도 없다.(이건 좀 아쉽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도전해볼 생각이다.) 책을 읽거나 핸드폰으로 써핑하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그런데 핸드폰이 줌에 매여있으니 책읽기 말고는 없다. 집중도가 높은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리라.
내가 일찍 일어난 만큼 아이가 좀 일찍 일어나도 짜증스럽지 않다. 밤 늦게 잠이 들었을 때는 7시 반 전에 일어나는 아이가 그렇게 미웠다. 한 숨만 더 자지. 조금만 더 자지. 발딱 일어서서 손을 잡아끄는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이불 속으로 숨었다. 여전히 아이가 일찍 일어나는 게 반갑지는 않지만(엄마는 아직 다 못 읽었다고!) 짜증이나 원망은 없어졌다.
이 두가지 만으로도 새벽에 일어나는 보람이 있다. 대신, 가능하면 11시 전에는 자야한다. 그래야 다음날 바람직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나? 별 일 없으면 아이와 함께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