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각 지역에서만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 대학교에서 모이면, 가지 각색의 사투리가 섞이다가 억양이 강한 경상도 사투리만 살아남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밤 책상에 앉아 과제를 하는데 덜컥 문이 열리고 룸메이트가 세상 피곤한 얼굴로 방에 들어왔다.
"뭔 일 있나?"
"아이다.. 별일은 무슨"
나는 갑자기 그 글이 생각나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튀어나온 어색한 사투리도 웃겼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형의 반응은 더 웃겼다.
19살 때까지 광주에서 자란 내가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건, 5년간 매일같이 붙어다니다 보니 생긴 오직 둘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습관이다.
"~나?"로 끝나는 이 정겹지만 어색한 사투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다가 꼭 이 형과 대화할 때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네가 날 길들인다면 정말 신날 거야!
너의 머리칼처럼 밀도 금빛이기 때문에 밀은 너를 기억하게 해 줄 거야.
그래서 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고..."
- 『어린 왕자』서로를 길들인다는 것
여우에게 밀밭이 어린 왕자의 금빛 머리칼이 된 것처럼. 어느새 나에게 "밥 먹었어?"가 아닌 "밥 먹었나?" 한 마디는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상징이 되어버렸나 보다.
서로를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내게서 어색한 사투리를 끌어내는 만큼, 내 어색한 사투리를 익숙하게 받아주는 만큼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유일하고 익숙한 존재가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