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Myeongjae Lee
KE1211.
19:20, 탑승구 6, 좌석 38F
제주행 편도 티켓만 들고 김포발 비행기에 오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왕복항공권은 나에게 늘 아프다.
그래도 이번처럼 운 좋게 5,000 마일리지와 15,000원으로 편도 항공권을 구매하고, 옆 자리도 빈 채로 편안하게 올 수 있는 호사까지 누리게 되는 날도 있는 걸 보니, 하루하루 어떵어떵 버티다 보면 드물게도 잠깐씩 숨통이 트이는 순간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밀린 일, 쫄리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이번 주말은 제주 대신 사무실에서 보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 이럴게 아니라, 오히려 매주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내가 살 길이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집에 들어와 씻고 밤 열두 시가 다 되어서 아이들과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고, 수다를 떨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새벽에 배가 아파 설사를 했는데, 그 순간 "그래, 이거지." 하는 기이한 미소가 지어졌다.
촉촉한 서귀포의 아침 공기, 솔오름 산책과 아내와의 수다, 한라산 뷰, 박제된 가을 수국과 마지막 남은 한 송이 동백꽃까지, 제주가 주는 선물이 소소한 위로가 되었다. 멀리 고미로스터리랩의 바닐라 라떼도.
©Myeongjae 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