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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Mar 24. 2024

2024. 3. 17.

열한 번째 ©Myeongjae Lee

LJ528.

20:05,  탑승구 12, 좌석 48A


이번 주, 아내의 생일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생일자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본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딱 집어서 요청하기도 하고, 고민고민하다가 '랜덤'(그냥 알아서 주세요, or 엄마아빠의 센스를 시험해 볼게요(?))'을 선택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그동안 랜덤 성공률은 꽤 높았다.


그래도...

아무리 아내가 '글쎄, 잘 모르겠어.'라고 했더라도, 그리고 하루하루 버티는 게 요즘 아무리 버겁다 하더라도, 아내 선물은 챙겼어야 했다. 분명히 공항 면세점에서 뭐라도 사야지 하면서 사무실을 나섰는데, 도착해서는 또 깜빡 잊어버렸다. 요즘 자꾸 그런다. 미안했다. 아내가 뭐라 한 것도 아니고, 섭섭한 티를 낸 것도 아니었지만.


둘째와 함께 홈플러스를 한 바퀴 돌았다. 스누피가 대문짝만 하게 그려진 연보랏빛 원피스 잠옷을 선물로 골랐다. 축하용으로 킹스베리도 한 박스 샀다. 꽃집에 가서 장미 한 송이를 예쁘게 포장해 왔다. 아이템들을 보더니, 첫째는, 예전부터 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다이소에 달려가서 종이박스를 하나 사 왔고, 곱고 정갈하게 접에 상자에 넣었다. 전날 찍은 사진을 한 장 프린트해서 카드를 만들었다. 비용은 세 명이 1/n.


카드에 한 녀석은, " ... 화이팅하고 재밌게 살자.",

다른 녀석은, "... 엄마의 모든 길을 응원하니까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해!"


다 컸다. 딱히 뭘 해준 것도 없는데 잘 컸다. 고맙다.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도 행복하고 싶다고, 나도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속으로 되뇌는데, 재밌게 살자는 아이의 메시지에 가슴 한 편이 또 먹먹했다. 나는 왜 그게 잘 안 되는 걸까.

아무튼, 아내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다행이다.


오늘 아점은 불고기+당면+떡 키트를 해주고, 오후엔 처갓집양념치킨에서 "6.슈프림양념치킨(한 마리, 순살로 변경)"을 하나 배달시켜 주고 공항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 뿐인데, 지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언제 즈음 극복이 될까. 


©Myeongja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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