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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May 07. 2024

2024. 5. 3.

열여섯 번째 ©Myeongjae Lee

KE1211.

19:20, 탑승구 8, 좌석 55A


유연근무였는데, 아차, 퇴근을 또 안 찍고 나왔다. 밀린 보고를 기다리다, 순서를 양보도 하고, 다섯 개 결재판에 사인을 받고, 비행기 시간 때문에 급히 나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컴퓨터를 끈 기억은 있는데, 서랍을 잠그고 나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어떻게 되겠지. 반드시 주말 분질러야 보고와 결재들이 서너 있어서 월요일부터 신경이 곤두선채 달렸는데 결국 중요한 건들은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빈손이다. 이 무거운 마음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할 같은 기분이 정도였다. 그래, 이것도 어떻게 되겠지.


"대한항공 1344편 출입문 닫겠습니다."

설마, 이 와중에 내가 비행기까지 못 탔다고? 화들짝 놀라 탑승권 확인을 위해 핸드폰을 꺼내는데,

"정정하겠습니다. 대한항공 1211편 출입문 닫겠습니다." 멘트가 이어져 나왔다. 안 그래도 고단한 한 주였는데, 나를 애 먹이기 위해 온 지구가 에너지를 모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별 게 다 골탕을 먹인다.


연휴 내내 비소식이다. 올해 제주에는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린다. 고사리 장마라고 하기엔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고, 너무 잦다. 집에 가서 뭘 할지 아무 계획도 없지만, 비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가족들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쁘다.


©Myeongjae Lee


왜 비행기 날개 끝이 위로 꺾여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물을 '윙렛 Winglet'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유튜브를 돌려보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장착 비용은 5~20억 원 정도로 싸지 않은데, 날개 부분의 공기저항을 감소시켜 연비를 5% 정도 높여 준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shorts/DT1dqjyza3o) 사진들을 보니 항공사와 항공기에 따라 종류나 모양도 다양한 것 같은데, 큰 비행기의 경우에는 효율이 그렇게 크지 않아 장착하지 않기도 하는 듯하다. 어디에는 절대적으로 쓸모 있는 무언가가 다른 어딘가에는 전혀 소용이 없어지기도 한다. 나의 무용(無用)도 누군가에게는, 무엇엔가는, 어디에선가는, 언젠가는 쓸모가 되긴 할까. 마음이 좀 그렇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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