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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Sep 15. 2024

2024. 9. 8.

서른세 번째 ©Myeongjae Lee

OZ8986, A321-200

19:50, 탑승구 7, 좌석 43K


©Myeongjae Lee

서른한 번째 ©Myeongjae Lee

"한 끼 정도는 함께하는 사이가 식구입니다."


KCC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스위첸' 광고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카피다.

<'식구食口' 한 집안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카피로 시작되는 이 광고를 우연히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간장계란밥' 편과 '김치전' 편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어떻게든 짧은 일정으로라도 제주에 다녀와야지 하는 그 강렬한 욕구의 기저에는 함께 밥을 먹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도 한 식구임을 가능한 자주 확인해야겠다는 무의식이 짙게 깔려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침저녁으로 아내와 동네 산책을 하고, 공사다망한 큰 녀석 이곳저곳 모셔드리고, 둘째와는 리뉴얼 후 재개장한 다이소에 가서 소소하게 쇼핑도 했다. 그리고 저녁 한 끼, 한 자리에 모여 소고기를 구워 먹고 떠들며 우리가 한 식구임을 서로 증명하고 확인했다.



큰 아이가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도덕선생님은 "혹시, 나 때문이야?"라며 몹시 흡족해하셨다는 후문이다. 매일이었는지 매주마다였는지, 철학자의 유명한 글귀를 교실 칠판 한 귀퉁이에 적는 것이 올해 본인의 미션이었고, 좋은 문장을 찾아내고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참고하라고 빌려 준 책을 다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철학에 대한 관심.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에피소드를 그날그날 듣지 못하고, 시간차를 두고 뒤늦게 업데이트해야 하는 이 상황이 다소 못마땅하지만, 마음은 좋았다. 비록 변방에 살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주체적인 삶, 도전하는 삶을 늘 살아내기를 오늘도 기도하고 열렬히 응원한다.


청귤 익어가는 서귀포, 도처에 푸릇푸릇함이 넘쳐난다.


©Myeongjae Lee



"오늘 하루 멀리서 내가 응원하고 있을게. 우리의 좋은 날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흘려보내자." (8.23.)


평소보다 길었던 서른한 번째 비행과 서른두 번째 비행 사이, 아내의 따뜻한 말이 내내 큰 위로가 되었다.

핸드폰에 찍힌, 과거형인 듯 미래형인 듯, "우리의 좋은 날들" 글자를 찬찬히 보고 있으면, 과거의 좋았던 기억들이 떠올랐고, 앞으로 올 어떤 좋은 날이 기대되기도 했다. 괴로운 일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툭툭 가볍게 털어버리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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