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 번째 ©Myeongjae Lee
KE1211, B737-900
19:15, 탑승구 10, 좌석 54A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매어 주십시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지기도 전이었다. 이륙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착륙한다는 승무원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승객들이 멈칫하며 깜짝, 순간 얼어붙었다가, 모두가 설마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착륙할 때가 거의 되어서야,
"자동 안내 방송 장비가 잘못되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이런 희귀한 실수는 늘 반갑고, 고맙다.
이틀 만에 만나도 반갑다.
이번 주, 아내와 아이들이 육지에 잠시 다녀갔다. 아침 일찍 시내에서 만나 함께 볼 일 보고, 점심 먹고 헤어졌다. 몸이 고단해서 환승역에서 작별하고 거처로 돌아갈까 하다가, 김포공항까지 함께 갔다. 탑승시간이 많이 남아 탑승층 의자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누구는 졸고, 누구는 핸드폰 보고, 누구는 책 보고, 누구는 음악 듣고. 말없이 모두가 각자 자기의 시간을 보냈다.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도, 비효율적으로 체력을 운용하는 것 같아도, 그 시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폭설이 내려 결항, 지연된 항공편이 앞뒤로 줄줄 있었지만, 가족들이 탑승할 항공편은 이상할 정도로 정시운항 안내 표시가 바뀌지 않았다. 검색대를 통과한 직후에 지연 안내가 떴다지만, 무사히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학교도 가야 해서 혹시나 염려와 긴장을 했는데, 감사했다.
탑승구와 맞닿은 브리지 위로 빛나는 빨간 불빛이 동백꽃처럼 보였다. 제주 덕분에 반가운 게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