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샨티 Sep 30. 2022

육아서를 쓸 수 있었던 동력

험난함이 삶의 거름이 되려면?

직장동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퇴근할 시간이 되어 칼같이 준비했다. 1분이라도 늦게 출발하면 아이의 하원 버스를 놓치게 된다. 차로 20분을 달려 집에 도착하는 시간과 어린이집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이 같다. 가끔 버스가 먼저 와 기다리게 되면 기다리는 아이와 선생님께 참 미안해진다.


세 아이를 먼저 키우신 동료 한 분이 말씀하셨다. 자신은 양가 어른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이렇게 허둥지둥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고. 전생에 큰 복을 지으셨 보다. 나는 고향에서 멀러 떨어져 살고 있기도 하고, 또 친정 부모님께서 현업으로 열심히 농사짓고 계시기에 시간을 내서 찾아오시지도 못했다. 시댁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저는 아이 임신하고 10년 동안 양가의 도움 없이 제가 다 키우고 있어요. 어제는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서 일하고 육아하다가 겨우 자리에 누우니 밤 12시더라고요."


푸념하듯 내뱉자, 워킹맘으로 어린아이 키우고 있는 다른 동료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본인도 그렇다고.


"그래도 그렇게 해봤기에 육아서를 쓰나 봐요"


최근에 출판사와 육아 에세이 계약을 하고 초고를 넘긴 상황을 아시는 다른 분께서 말씀해주셨다. 가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다. 아, 그랬지. 그래서 그 이야기를 안 쓰고는 못 배길 것 같아 신들린 듯 썼구나. 도저히 다른 글감으로 넘어가지 않아 이 산부터 넘자 마음먹고 어떻게든 쓴 원고였다.




얼마 전 만난 선배께서 일하면서 육아까지 하는 일상은 '고행'이라고 표현하셨다. 겪어보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는데, 그 고행의 한가운데 있는 후배를 애처롭게 여기셨다. 공감한다. 결코 쉽지 않다. 그저 하루, 또는 며칠, 아니면 1년만 열심히 살고 성취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강약 중간 약의 템포로 쭉 이어진다. 언제까지? 아이가 내 품을 떠날 때까지. 어쩌면 그 이후에도.


둘째 임신 소식을 전하자, 나를 잘 알던 한 지인은 "샨티는 한 명만 낳을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아이 1명마다 드는 에너지의 양과 질을 아는 그였기에, 나를 아끼는 마음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친정엄마와 육아 선배들이 암만 말해줘도 모르고, 직접 겪어봐야만 '이 정도로 힘들구나' 느낄 수 있는, 결코 녹록지 않는 세계였다.


그런데 인생은 어차피 고행이다. 이렇게 안 살았다고 해서 행복했을까 생각해보면, 싱글 시절 또 다른 어려움과 괴로움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오히려 돌아갈 거리를 지름길로 훅 가로질러 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기 위해 또 하나의 생명들을 품었고, 사랑을 배우기 위해 온전히 사랑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삶에 대한 더욱 뜨겁고 적극적인 행위가 '육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고통은 지혜와 함께 온다'라고 했다. 비단 슈타이너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험난함이 삶에 거름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 안다. 알면서도 고통 속에 있을 때는 더 큰 전망을 그리기가 어렵다. 힘겨움 속에서 매일을 견딘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며, 가끔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때 눈앞이 깜깜해질 때가 있다. 그분들의 상황은 내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힘드실 거다. 그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리랴. 하지만 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이런 것이 필요하고 신경을 써주시면 좋겠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도 내면에 힘이 있어 미래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일단 소통이 되기 시작하고, 힘겨움을 딛고 무언가를 시작하신다. 하지만 벽을 만난 듯 대화가 도돌이표로 반복되는 분들도 있다. 문제 인식과 해결책 강구까지 가지 못하고 아이 때문에 당신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고 어려운가에 대한 하소연으로 귀결된다. (그런 분들께는 내려놓고 그저 좀 더 공감해드리려고 노력한다.)


육아의 과정이 그저 '나 진짜 힘들었거든~'로 끝나지 않길 바랬다. 초짜에다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어떻게든 나를 붙들어 매야 했다. 유속이 빠른 강물에 빠지지 않으려면 적당한 헤엄을 쳐야 한다. 그래서 매일 훈련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5분이라도 깊은 호흡을 하며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느꼈다. 상황에서 벗어나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보는 연습, 달리 말하면 '명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발만 뒤로 물러서도 객관화되었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먹을 수 있었다.


-좋은 마음가짐도 허약한 체력 앞에서는 한순간에 힘을 잃는다. 기본 체력을 갖추려 했다. 여건에 따라 108배 절운동을 했고, 마을길을 걷기도 했고, 유튜브 홈트를 보며 땀을 흘렸다.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하며 굳은 근육을 풀어냈다.


-일기든 뭐든 기록했다. 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오늘은 아이와 이런 일이 있었고, 지금 만나는 상황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공책에도 끄적이고 블로그에도 쓰고, 비밀로도 쓰고 같이 쓰는 작업도 하고... 쓰는 활동은 그 자체로도 힐링이었고, 되새김질 또한 가능하기에 훌륭한 성찰의 도구가 되었다.




매일 쓴 약만 삼켰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육아는 단물도 함께 온다. 생명이 나고 자람을 온전히 묵상할 수 있는 시간. 세상 누구보다 예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볼 수 있는 선물. 벅찰 정도로 100%를 다 주는 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사랑과 믿음... 아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다채로운 감정의 최고점과 최저점까지 어찌 경험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삶의 스펙트럼이 한껏 넓어지고 있다.


오늘도 30분 단위 타이머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를 포함한 여러 생명들의 스케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핸드폰 첫 화면 달력에는 글자들이 빼곡하다. 그 시간과 글자가 모여 육아서를 쓸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미소가 지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보물처럼 대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