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만들어진 모험놀이터 시범운영단이 되었다. 총 7번의 만남 동안 아이와 함께 실컷 놀아보는 장이 펼쳐진다. 편해문 선생님의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와 김성원 선생님의 <마을이 함께 만드는 모험놀이터>를 재미있게 읽었고, 나 어릴 때처럼 내 아이도 온몸을 움직이며 실험해보고 모험해보는 놀이의 세계에 듬뿍 빠지기를 원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움직임이 제한될수록, 더 많이 움직이고 노는 것이 정답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2년 전, 인연이 닿는 엄마들과 같이 책 읽고 자신이 사는 곳에서 모험놀이를 펼쳐보자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바이러스 상황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아 마스크 벗고 다 같이 만날 수 없었지만, 놀이를 허용하는 태도, 아이와 있는 장소에서 마음껏 노는 마인드를 장착할 수 있었다.
모험놀이터 시범운영단의 이름은 '빈둥 프로젝트'였다.
'빈둥'의 의미는 첫째, 빠름 빠름의 시대에 빈둥빈둥 놀아보자, 둘째, 빈 둥지에 새로운 것들을 채워보자는 뜻이었다. 네이밍 참 기가 막히다. 그 철학에 동의하는 12 가정이 모였다. 첫 번째 시간이 펼쳐졌다. 넓은 강당, 양말을 벗은 아이들과 둥글게 앉았다. 벌써부터 옆 아이와 친해져 재잘거리는 아이, 부끄러운 듯 엄마 아빠에게 딱 붙어있는 아이, 모든 영혼이 다르듯 아이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무얼 하고 노는 걸까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은 동일하게 반짝였다.
첫 번째 놀이는 말하지 않고 몸으로 소통하기. 진행하시는 선생님께서 옆 사람을 보며 박수를 쳤고, 옆에서 옆으로 박수가 이어졌다. 한 바퀴를 다 돌다가 방향을 바꿔보는 친구도 있었고, 박수를 두 번 치거나 세 번 치는 사람도 있었다. 발을 쿵쿵 굴러보거나 앞사람에게 달려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아직 참여할 마음이 나지 않아 패스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조용히 허용되었다. 말소리가 없으니 눈으로 충분히 살폈고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제 이름을 부르며 공 굴려서 전달하기. 크게 써서 가슴팍에 붙여놓은 이름을 보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언제 자기 이름이 불리나 두근두근, 호명이 되면 신이 나서 얼른 다른 이의 이름을 선택하기도 하고 뜸을 들이며 얼굴들을 살피기도 했다. 큰 공을 어느 정도의 힘으로 밀어야 상대방에게 전달될지 힘을 더 주거나 빼면서 조절했다. 자신에게 전달되는 공을 잘 받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촉감이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이 막대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검지 손가락 세워 잡고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시간도 가졌다. 막대기를 떨어뜨리지 않고 걷다가 아이가 앉으면 따라 앉고 같이 누웠다가 일어났다. 조금 자신감이 붙으면 눈으로 신호를 주어 동시에 점프를 해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막대기 밑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거나, 두 사람을 넘어 세 사람, 네 사람, 점점 확장하여 막대기를 사이에 두고 원을 만들어갔다. 활기가 생기고 웃음이 넘친다. 따로 스트레칭을 하지 않아도 구석구석 숨겨진 근육까지 쓰게 되었다. 감각이 열리면서 놀이 근육이 만들어졌다.
시골 출신인 나는 초등 6학년을 놀면서 보냈다.
영어 수학 학원 다니는 친구 하나 없었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다. 매일 학교 다녀오면 가방 던져놓고 마을 공터에 모여 놀이를 했다. 전봇대 2개만 있어도 '마야'라는 놀이를 했고, 나뭇가지를 모아서 '자치기'를, 반듯한 돌을 찾아서는 '올캐차기(비석 치기)'를 했다. 봄이면 진달래 꺾으러 높은 산까지 갔고, 겨울에는 비료포대 썰매로 동네 언덕을 거대한 눈썰매장으로 만들었다.
다채로운 움직임 속에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온 몸 구석구석 근육이 팽팽하게 다져졌다. 여름엔 까맣게 탔고 겨울엔 두 볼이 빨개지고 두 손이 다 텄지만, 비만이거나 아픈 친구는 거의 없었다. 모두가 날렵하게 움직였고, 도통 아프질 않으니 대부분 개근상을 탔다.
적어도 어릴 때는 그렇게 놀면 좋겠다.
온갖 감각이 충분히 채워져야 그다음 발달 과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도 촉감각으로 상대와 나의 경계를 경험한 아이는 훗날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보다 수월하게 가져가고, 이는 건강한 '자아'와도 연결된다고 했다. 모든 감각이 그렇게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몸이 열려야 마음이 열리는 법이다.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아이가 아닌 일반적인 어린이들에겐 시각 따로, 청각 따로, 후각 따로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겐 '놀이'라는 훌륭한 감각통합지원시스템이 있다.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팔다리 움직이며 많이 많이 놀라고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