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의 놀이는 자연스러웠다. 할 수 있는 게 놀이밖에 없어서 놀았다. 마을 사람 모두가 농사짓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부모님들은 늘 바빴고 우리는 우리끼리 놀았다. 지금은 일상생활이 된 핸드폰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때, "OO야~ 놀자"라고 대문에서 부르면 우르르 몰려나와 함께 놀았다.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초등학생이 되면서 어디 어디서 몇 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책가방 벗어던지고 나가 놀았다.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훨씬 살기 좋아진 지금, 아이들의 놀이는 어딘가 어설프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어른들이 나서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 놀 친구를 섭외해야 한다. 놀이는 자발성에서 비롯되는데 모든 관리의 주체가 너무나 어른이고 수동적이다. 놀이가 이루어지는 조건만 제대로 알고 던져주면 아이들은 논다. 그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
1. 놀 장소
아이들은 어디서든 논다. 공터도 좋고 놀이터도 좋고 집도 좋고 숲도 좋다. 어떤 공간도 놀이하는 '터'로 변신시킬 수 있는 것이 아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아이들과 놀이공원을 간 적이 있었다. 바깥 놀이시설을 타다가 지친 몸도 쉴 겸 놀이동산 내 실내놀이터에 잠시 갔다. 커다란 에어 바운스가 있었고 미끄럼을 탈 수 있게 경사가 져 있어서 언뜻 보기에도 참 재미있어 보였다. 나름 즐겁게 놀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관리하시는 분께서 바로 앞에서 무선 마이크를 들고 아이들 하나하나 지적하며 "위험해요, 조심해요, 그렇게 타면 안 돼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자 앉으세요" 쉴 새 없이 말씀하시는 거였다. 40분 동안 놀고 20분 동안 청소하는 시스템이었데 40분 내내 마이크가 울려댔다. 아무리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라도 심하게 통제하는 환경에서는 안 놀고 싶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몇 번 타보고는 그냥 나가자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그저 공터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아이들은 잘 논다. 공 하나만 가지고도 몇 시간은 거뜬히 노는 신비로는 아이라는 존재. 그 존재를 믿어보자.
넓은 공터는 좋은 놀이터
2. 놀 사람
같이 놀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학교나 어린이집을 마친 후 저마다 학원 스케줄이 있어 친구를 마음 놓고 만나는 일이 참 어렵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학원을 등록해야 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까지 벌어진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놀이에 대한 합의를 이룬 몇몇 가정이 함께 논다면 좋겠다. 빈둥 프로젝트처럼 곳곳에 살던 놀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손을 들고 모일 수 있다.
3. 놀 도구
무엇이든 놀잇감이 된다. 막대기도 종이도 풀도 고무통도. 놀 사람이 있고 놀 장소가 있으면 아이들은 뭐든 가지고 논다. 빈둥 프로젝트 실내 워크숍에서는 종이 골판지 하나를 가지고 2시간 넘도록 놀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은 나뭇가지를 꺾어 칼싸움을 하며 놀았고, 돌이 가득한 곳에서는 파쿠르 지형지물 놀이를 하며 놀았다. 풀과 꽃이 가득하면 소꿉놀이는 피해 갈 수 없다.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 놀 수 있는 도구가 된다.
볏짚에 비닐만 덮어둬도 잘 노는 아이
미국 케네디크리거연구소 소아정신과 의사 지나영 교수님의 책 <본질 육아>를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학업성취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여야 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 그만큼 많은 청소년들이 끔찍한 자살률과 통계에 잡히지조차 않는 자해 행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인 아이들에게, 내버려 두면 어떻게든 놀이를 만들어 노는 아이들에게 틈을 주면 좋겠다. 쉴 틈, 놀 틈. 인위적인 손길을 멈추고 가만히 놓아 곳에 새순이 돋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아이들도놀 장소, 놀 사람만 있으면 주변 모든 것을 도구 삼아 파릇파릇 숨 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