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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sheeeran May 20. 2024

나는 거북이 엄마입니다

#3. 대혼란

쭌이의 자폐 스펙트럼을 발견해준 5촌 조카였다. 첫 아이에 대한 무지함을 가진 나에게 아주 고마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그 당시에는 없었던거 같다. 해가 뉘엿 뉘엿 저무는 겨울에 잠든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집앞에서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스케쥴로 너무 힘들다고.. 조카는 스케쥴러를 뒤지며 빈 시간대를 찾아주려는 듯 했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 시간을 넘게 통화를 했다. 숙모가 된 내가 남편 조카와 통화를 하며 엉엉 울었다. 그렇게 칼 같이 바로 다음날부터 조카의 센터를 그만둬버렸다. 내 상황을 다 이해한다고 했다. 힘들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했지만, 미안해서 더더욱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신도시이다. 논밭이었던 자리를 모두 허물고 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 공원등이 조성되는 중이다. 아직 인프라가 많이 자리잡히지 않아 조금 불편하지만, 하나둘씩 새로운 빌딩에 익숙했던 상가들이 들어오니 살만했다. 다시 예전처럼 쭌이는 어린이집에서 놀이하고 오후 4시경 집에 돌아오면 저녁거리를 사러 함께 동네 마트를 가서 장을 보고 간단한 산책을 하다 집에 들어왔다.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산책을 하다 자꾸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아동발달센터였다.  




쭌이의 발달이 느린 모습이 센터를 다니고 나니 모든 생활속에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다시 다니긴 해야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상태이기도 하고, 내가 조금 쉬고 싶었던 것 같았다. 간판을 걸고 있는 아동발달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집 앞이었다.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집에 가서 전화를 해보니 아직 오픈은 안한 상태지만, 원하시면 전화로 상담을 미리 예약해준다고 하여 예전에 쭌이가 했던 치료들 토대로 원하는 시간대가 가능한지 문의했다. 다들 긴가민가하고 상담만 하고 예약을 안해둔 상태인지,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는 모두 예약을 할 수가 있었다. 쭌이의 중단된 치료로 한켠에 불안한 마음이있었는데, 이때다 싶어 당장 예약을 해달라고 했다.




조카의 센터에서 치료를 중단한지 약 한달 남짓 되었을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도 힘들었지만, 엄마인 내가 쭌이의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병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왜 이렇게까지 내가 해야하나, 이렇게 다녀도 드라마틱한 효과가 없는 이 치료를 이렇게 매일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종종 들었다. 물리적인 치료가 아니기에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해야 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또 대기실에 있으면서 쭌이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친구들이 우르르 들어오는걸 보는 것도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환경에 지배 당하는 느낌이었다. 쭌이도 저런 추구행동이 나올까? 쭌이도 말이 트이면 저런식의 어투를 가지게 되는걸까? 둘째도 느리게 되는건 아닐까? 그래서 대기장소에 둘째와 있는게 더더욱 힘들었었다. 당시 쭌이의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지도 못할 뿐더러 부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쭌이가 40개월이 됐을 무렵 새로 옮긴 발달센터에서 이제 내년에 5살이 되니 특교자 유치원으로 기관을 옮겨보시기를 추천한다는 치료사님들의 권유가 있었다. 여럿 선생님들이 추천해주시기도 했고,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쭌이와 또래의 아이 엄마와 얘기를 나누다가 알음알음 정보를 얻게 되었다. 통합 어린이집이 아닌 이상 일반 어린이집에서 아무리 밀착 케어를 한다고 한들 치료사 자격이 있는 선생님들과의 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놀이의 질부터가 달라지니 특교자 유치원을 보내는게 아이에게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지자체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특수교육대상자 입학 신청 메뉴를 찾았다. 보통 매년 7월쯤 1차 입학 신청서를 받고, TO가 남는 기관들을 대상으로 9월쯔음 2차로 다시 접수를 받는다고 한다. 내가 교육청 사이트를 뒤지고 있을 때는 이미 8월달이었다. 1차는 마감이었고, 2차를 기다리며 준비해보기로 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 어린이집이 1:2로 아이를 잘 돌봐주시긴 했는데, 아무래도 쭌이가 가끔씩 각성이 올라올때 낮잠을 안자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담임 선생님을 조금 피곤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다 이해하신다고 괜찮다고는 하셨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눈치챌 수 밖에 없었다. 치료사 자격이 있는 선생님과 일과를 보냈더라면 쭌이를 기관에 보내놓고 나오는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9월전까지 이런저런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여전히 더운 여름 끝자락에 옹알이를 시작한 둘째는 친정집에 잠시 맡겨두고 서류들을 모아서 교육청에 방문했다. 현재 유치원에서 발달이 느린 아동들을 치료하고 있는 선생님들이라고 하셨다. 서류를 접수하고, 내가 희망하는 유치원의 리스트를 적고, 현재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왜 특교자 유치원에 들어가야 하는지 등 간단한 면접을 보았다. 아동의 발달검사결과지가 없으면 교육청 자체에서 수행하는 검사를 한다고 했는데, 다행히 그 해 초반에 베일리검사를 수행해 놓았던게 있어서 그 결과지를 들고 갔다. 그리고 한번 더 무너졌다. 나는 아직 쭌이의 장애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진단받은 장애명을 적는 란이 있었다. 



- 아직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요?

- 베일리 검사 시 의심되었던 진단명이라도 적어주셔야 해요. 



한글자 한글자 떨리는 손으로 눌러 적었다. 





자폐 스펙트럼. 





코끝이 찡하고 뜨거워지면서 괜시리 또 눈가가 촉촉해졌다. 내가 아직도 인정을 못한건가? 난 쭌이의 느린 발달을 다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손으로 쭌이의 진단명을 적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반드시 적어야만 하는 필수 입력란이라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마주보고 앉은 교육청 직원이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는데, 눈가에 고인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괜히 서류들을 다시 보느냐고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 특교자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온건데, 입학시키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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