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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sheeeran Feb 26. 2024

나는 거북이 엄마입니다

#2. 첫 사교육

저긴 도대체 뭘 하는 곳인데 동네에 이리도 우후죽순 많이 생기는지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궁금했는데, 그 곳엘 내가 오게 되었다. 그것도 남편의 5촌 조카가 운영하는 곳으로.. 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한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더위가 슬슬 시작되던 날이었다. 6월 말이라 그런지 아기띠로 둘째를 안고, 첫째 쭌이를 같이 데리고 다니려니 몸에 있는 모든 구멍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쭌이가 아동발달센터를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조카와 상담하기 전 잠시 대기하면서 둘째를 안고 센터 안을 둘러보았다. 2-3평 남짓한 방들이 얇은 가벽으로 이어져 'ㄷ'자 모양을 하고 붙어있었고, 번호를 붙여 10개가 넘는 방으로 빼곡했다. 아이들이 문을 박차고 나와 엄마를 찾는 일이 종종 있어 문 손잡이는 어른 키높이에 위치해 있었다. 치료사가 문을 열어줘야만 아이들이 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엄마들의 대기공간은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40분 동안 엄마들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매 타임마다 아이들이 그 작은 공간으로 각자 담당 치료사의 손을 잡고 들어간다. 조용히 따라 들어가는 아이가 있는 반면, 소리를 지르고 울며 발버둥 치면서 억지로 끌려들어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는 아이를 겨우 들여보낸 엄마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40분이 지나면 쭌이 또래 아이들이 각자 방에서 우르르 뛰쳐나와 엄마를 부른다.



금세 내 차례가 되었다.



- 숙모, 특별히 우린 가족이니까 상담 예약 최우선으로 해드려요. (속닥속닥)

- ㅎㅎ 감사해요~

- 일단 제가 쭌이 관찰했는데 무발화에 비언어적인 의사소통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긍정, 부정의 표현도 안 나오는 것 같고.. '엄마'라는 단어가 자발어로 나온 적이 있을까요?

- 6개월 때 즈음 옹알이할 때 몇 번 들어보고 그 뒤로는 못 들어봤네요...

- 음.. 일단 언어치료가 제일 시급해 보여요.

- 네, 그럼 예약 잡아주세요. 그거랑 또 뭘 해야 할까요?

- ㅎㅎ 숙모~~ 충격받으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멘탈도 강하시고 현실적이신거 같아요! 쭌이한테 좋은 결과 있을거에요. 일단 예약 잡아드릴게요!



이렇게나 많은 아동발달센터가 있는데 예약과 대기가 꽉 차서 1시 반에만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보통의 엄마들도 나처럼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난 뒤 센터를 보내길 희망하기에 오후 시간대는 이미 대기자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한들 예약자를 내보낼 수는 없었으니 남은 시간대에 예약을 했다. 어린이집에서 센터까지는 40분 거리였다. 바로 다음날부터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고 있는 쭌이를 그대로 둘러업고 나와 카시트에 앉혀 발달센터를 다녔다. 기어 다니던 둘째는 꾸벅거리며 조는 형아 옆자리 카시트에서 눈만 꿈뻑이며 매일 어디를 이렇게 나를 데리고 다니냐는 항의의 눈빛이었다.








쭌이가 27개월이 되던 때였다.

또래에 비해 말이 느리다는건 인지하고 있었다.

발달센터를 다녀야 하는 줄은 몰랐다.




쭌이는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집에 있는 걸음마보조기를 뒤집어 네 바퀴를 연신 돌려 됐다. 20년 지기 친구가 고심 끝에 선물해 준 소프트 블럭 장난감은 조립 한번 해보지 않았고 일렬로 나열하기만 했다. 그게 그냥 쭌이의 독특한 놀이방식이라 생각했다. 난 집에 있는 모든 바퀴 달린 물건을 분해시켜 돌려줬고, 블럭은 더욱더 길고 예쁘게 줄 맞춰 나열해 주었다.


어떤 날은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버스정류장에 나란히 앉아 굴러가는 버스와 자동차 바퀴를 한 시간도 구경시켜줬다. 좋아하는 쭌이를 보며 '이게 너의 낙이구나! 질리도록 보며 놀자!' 하는 마음에 추구의 한계치를 점점 높여줬다. 돌아가는 바퀴를 보며 온몸에 힘을 주고 좋아했다. 일렬로 나란히 줄 세워진 블럭을 보며 두 손을 펄럭거리면서 뛰고 좋아했다.


국민장난감이라 불리는 모든 소리 나는 장난감은 전화를 받듯 귀에 바짝 붙이고 다녔다. 전화놀이를 하는 건가? 싶다가도 아직 말이 느린 쭌이의 대답을 듣지 못하는 나는 쭌이의 행동을 따라서 사운드 마라카스를 귀에 대고 전화받는 척 놀이를 해주었다. 마라카스에서 나오는 동요 사운드가 고막을 찌르듯 귀가 너무 아팠지만, 쭌이가 좋아하는 놀이였기에 사운드가 나오는 곳에 테이프만 덕지덕지 붙인 채 다시 전화받기 놀이를 했다.


 


나의 무지함으로 쭌이의 역치는 더욱 높아졌고, 단순한 자극에는 재미가 없어졌다.

놀이 수준은 더 낮아져 갔다.

쭌이의 놀이는 놀이가 아니었다.







보름정도 센터를 다니며 상담해 보니 언어지연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감각이 예민해 어린이집에서 지점토 놀이도 할 수 없었다. 물감놀이도 할 수 없었다. 손에 지점토나 물감이 닿는 순간 자지러지게 울며 거부했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입안에 떡이나 젤리 같은 물컹한 음식이 들어오면 뱉을 줄도 몰라서 씹지도 못한 채 헛구역질을 하며 그 감각을 빠르게 없애기 위해 억지로 삼키기 급급했다. 그러다 응급실에 실려갈 뻔한 적도 있었다. 단순히 조심성이 있거나 예민한 아이였다면 그 자극을 자주 노출시켜 적응을 시켜주면 그만이지,, 쭌이는 고유수용성감각*을 담당하는 회로가 거의 제로에 가까웠고, 시각과 청각감각만을 완전히 추구했다.



치료사마다 자폐 성향이 있다 하고..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하니까... 골든타임에 조기개입을 하면 예후가 좋아질 거라는 말에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카가 해주는 말이기에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부정했을지도 모른다. 5-6살에 말이 트이는 아이도 있다는데 뭐! 언어가 늦게 트일수록 똑똑하다는데 뭐! 자폐는 무슨?..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지나가는 감기처럼 시간이 좀 걸리지만 곧 나아지겠지라는 희망 가득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무거워지는 둘째를 안고 주 3일 한 타임당 2회기씩 3개월 정도 센터 생활을 하니 체력이 조금씩 무너져가는걸 느꼈다. 꾸벅꾸벅 졸며 언어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나오는 쭌이를 보며 안쓰러웠다. 수유실이 없어 10개월 된 둘째를 빈 치료실 구석 바닥에 앉아 모유수유를 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방향을 최대한 피해 손수건으로 앞가슴을 덮고 수유를 하다 쭌이의 치료종료 시간이 오면 수유하다 잠든 둘째를 흔들어 깨워 그대로 안고 앞가슴도 대충 덮은 채 상담을 하러 들어갔다. 그 와중에 쭌이는 낮잠을 못 자서 각성이 올라간 상태로 센터를 마구 뛰어다녔다. 치료사와의 상담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휴, 내가 지금 이 센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골든타임: 영유아 36개월까지는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이다. 이때 말이 터지지 않았다면 다양한 자극과 언어치료를 통한 외부개입으로 언어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끌어올릴 확률이 커지는 시기이다.


*고유수용성감각: 내 신체의 위치, 자세, 평형 및 움직임 등에 대한 감각으로, 우리 몸이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감각이다. 버스가 급정거 혹은 급출발 시 순간적으로 몸에 힘을 주어 균형을 잡는 일련의 과정들은 고유수용성감각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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