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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 cool Aug 14. 2021

너는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

사랑했던 사람이 내게 물었다

"너는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


사랑하는 사람이 이 질문을 내게 했을 땐, 콩깍지가 잔뜩 씌어있을 때였으므로 나는 '다시 태어나면, 네 눈이 될래. 그래서 네가 보는 걸 똑같이 보고 느낄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때 당시는 굉장히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를 노려보고 있는 눈의 모형을 떠올리자니 완전 호러다. 


요즘 들어 왜 자꾸 이 질문이 떠오르는 걸까? 


나의 이번 생은 망했다고 느껴서다. 어떻게든 영끌해서 살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하긴 하는데. 노력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망한 것 같다. 그림을 그려놓고 마음에 안 들어서 자꾸 이런저런 색을 덧칠하다 보면 그냥 검은색이 되는 것처럼. 다시 태어나서 모든 것을 리셋하기 전에는 부분 보수로는 답이 없다.  


적당히 열심히 하는 어른이 되었다.


나이를 이만큼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실패다. 인생 자체가 실패라 실패라면 이골이 났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실패는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나이를 먹으니 내상도 심해진다. 게다가 회복도 쉽지 않고, 흉터도 짙고 크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물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나는 마감일까지 맡은 바 최선을 다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밥 먹다가도, 잠자다가도, 세수하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하며, 원고를 보고 또 보고, 글을 읽고 또 읽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나름 '완성품'을 세상에 내놓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게 최선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쭈뼛거리다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자니, 겨우 이것밖에 못했냐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그렇다고 대충 한 건 아니니까 그 중간쯤 뉘앙스를 담은 '열심'이란 단어를 선택해서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패했을 경우에, '내 진짜를 못 봐서 그래. 난 그것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라고 떨어진 나의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달래거나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까 후회는 없어.'라고 위로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성과가 결과이고 능력인 프로의 세계에서 '열심'은 중요한 가늠자가 아니다. 아마 나는 열심히는 했지만 일거리 하나를 잃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이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으랴. 


KBS 드라마 '안녕 나야'


얼마 전 TV를 봤다. 나처럼 '이번 생은 망했어'삘의 37세 주인공이 17세의 나를 만나는 드라마였다. 17세의 잘 나가는 인기녀였던 나는 37세의 주인공을 보고 기겁을 한다. '이런 찌질이가 미래의 나라고?' 하며 되묻는다. 


그 장면을 보는데, 나는 왜 시원하게 웃지 못했을까? 웃기는커녕 명치끝이 묵직하게 아파왔다. 뼈 때리는 말을 들은 것이다. 과거의 나도 20년 뒤의 내가 이렇게 살 줄은 몰랐으니까.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멋있고 당당하고, 이름 꽤나 날리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효도는커녕 내 앞가림 하나 제대로 못하는 어른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가 되어 매일매일 불안함과 불투명한 인생을 사는 방관자가 되어버렸다.


정말 어쩌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됐지? 


살면 살수록 개운하지가 않다. 이미 맨 마지막 끝판왕이 '꽝'인 걸 알면서도 이 많은 퀘스트를 깨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몇 날을 고민하던 나는 더 살아보기로 했다. 나의 맨 마지막은 '꽝'일지라도 앞으로 남겨진 퀘스트를 깨면서 때론 절망하고, 실패도 하겠지만, 가끔은 짜릿한 성공도 할 것이고, 반전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은 나의 날들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지금처럼 뚜벅뚜벅 걸어서 나의 날을 살아보기로 한다. 단,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지 않게. 미지근하게. 은근하게. 실패하더라도 크게 좌절하지 않고, 성공하더라도 크게 자만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감정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나의 날들을 무던히 살아내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너는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라고 누군가 다시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다신 태어나고 싶지 않아, 그 무엇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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