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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 cool Aug 21. 2021

이 세상의 모든 둘째를 위하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끼인 둘째의 이야기

나는 둘째다. 둘째 중에도 위로는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는 이른바 끼인 둘째.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더 받고 싶어 언니와 경쟁했고, 남동생이 태어난 후로는 부모님의 관심을 뺏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나에게는 생존 본능 같은 것이었다. 사랑을 받아도 더 받고 싶었다. 단 한 번이라도 사랑을 받고 받아 넘쳐흐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부모님이 우리를 차별해서 키운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렇게 독점적인 사랑이 고팠다. 


나보다 5살이나 많은 언니는 나의 경쟁 상대였다. 


나는 억울한 게 많았다. 태어나자마자 나보다 세상을 5년이나 더 산, 인생 프로 언니가 떡하니 있었다. 언니는 뭐든 나보다 능숙했다. 그런 언니를 이겨보려고 주도면밀하게 관찰했지만, 프로 5년 차를 이길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꿔, '착한' 아이가 되기로 한다. 가능하면 엄마, 아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아이. 그 전략은 어느 정도 잘 통한 것 같다. 엄마도 어릴 때 나를 부모 속 한 번 크게 썩인 적이 없고,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했던 모범생으로 기억하니까. 하지만 기억하자. 모든 인생은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 어릴 때 얌전한 아이는 커서 부모 속을 홀랑 뒤집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나였다. 


이기지 못하는 건 싫어 


내가 어릴 때 제일 싫어했던 것이, 언니가 다니던 학원에 다니는 거다. 언니를 가르쳤던 피아노 선생님이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었고, 언니를 가르쳤던 학원 선생님이 있는 학원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언니를 가르친 선생님이 아닌, 나를 처음 만나는 선생님께 배우고 싶었다. 이유는 단 하나, 비교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라면 비켜가고 싶었지만, 별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더 큰 녀석이 나타났다.


언니를 이겨보지도 못한 채, 내 나이 8살에 더 큰 녀석을 만났다. 바로 나와 7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 내가 인생 7년 차 선배지만, '대를 이을 장손'이란 존재의 벽은 높았다. 서러웠다. 언니가 부모의 손을 탈 일이 적어지고, 친구가 더 좋아지는 나이가 되며, 이제 나도 관심을 좀 받아보나 했는데. 남동생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할머니가 남동생을 챙길 때마다 소위 '눈꼴 시릴' 때가 많았지만 애써 눌렀다. 아니, 남들 안 볼 때, 괜히 동생 머리를 콩 쥐어박는 걸로 분풀이도 했었다. 나는 왜 첫째가 아니고, 남자가 아닐까? 그게 슬펐던 적도 있었다. 


나는 처음이 아니잖아.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 또렷이 기억난다. 


"나는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시험 봐서 백점을 맞아오는 것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다 처음 해보는 건데. 엄마는 언니한테 처음 '엄마'라는 말도 들어보고, 백점도 언니가 먼저 맞아와서 속상해. 나는 엄마한테 처음인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게 부모님께 처음이고 싶었던 나는 결국 해내긴 했다. 속 썩이는 걸로 1등. 생각지도 않았던 일로 부모 속을 참 많이도 뒤집어 놓고 지금은 이렇게 속 편하게 살고 있다.  


사랑이 부족하면, 내가 사랑을 주면 돼


사랑이 고팠던 나는 부족한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쏟는 걸로 채웠다. 그 존재는 연예인이었다. 연대 농구부를 좋아했고, H.O.T. 를 좋아했고, 이승환을 좋아했고, 덕질의 역사가 깊었다. 그들에게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내 마음에도 사랑이 채워졌다. 사랑은 참 희한하다. 그들에게 사랑을 퍼주고 또 퍼줘도, 내 안의 사랑은 모자란 법이 없었다. 화수분처럼 늘 샘솟았다. 넘치는 덕질이 나의 끼인 둘째 콤플렉스를 넘어서게 해 준 것도 같다. 


두 번째가 좋아.


지금은 내가 둘째인 게 좋다. 언니와는 매일매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하루 일과를 시시콜콜 나누는 둘도 없는, 죽고 못 사는 소울메이트가 되었고, 동생에겐 남자가 아니라 느끼는 열등감은 없어진 지 오래다. 장녀라는 책임감이 무거운 언니 뒤에 슬쩍 숨어 서툴러도 되는 둘째라서 좋고, 동생보다는 조금 어른인 척할 수 있어서 좋고, 아빠와 엄마에게 다 늙어서도 애교 부릴 수 있어서 좋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둘째로 태어나고 싶다. 그 누구도 아닌 언니의 동생, 엄마, 아빠의 둘째 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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