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밥벌이에 대하여
프리랜서 작가로 밥을 벌어먹고 산지, 어언 1n년차가 되었고 이제 어디 가면
회사의 중역급(!) 정도는 쌈 싸 먹을 나이가 되었다.
시작할 때는 원대한 꿈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저 조금이라도 적게 일하고
단돈 5만 원이라도 더 받는 게 꿈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조금 씁쓸할 뿐.
여전히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또 피드백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 수정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인생의 모토가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인 사람이니,
커다란 도움이 되진 못해도 창피한 결과물을 낸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은 소중하고, 일거리를 주는 클라이언트는 감사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일은 그저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던 어는 날이었다.
오늘도 무사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터에 갔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게 정작 내 마음대로 되는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늘 변수가 있고, 그 변수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그래서 일터에 갈 때는 늘 믿는 신을 찾으며
'오늘도 무사히!'를 외칠 수밖에.
역시나 현장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여러 문제가 엮여 기다리는 게 일이 된 순간이었다.
표정을 잃은 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그때,
한 감독님의 아이패드가 눈에 들어왔다.
"감독님, 작업하신 거 구경해도 돼요?"
같이 기다리는 동료의 적적한 마음을
아셨는지, 선뜻 아이패드를 보여주셨다.
"와~ 이건 언제예요?"
"이때가 OO 년 O월인데. OOO이었거든.
세팅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나중엔 손이 덜덜 떨리는 거야.
이거 큰일 났다! 마무리할 수 있을까?입이 바싹 마르는데.
그 와중에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라 욕심이 생기는 거지.
다들 시간 없다고 재촉하는데.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8번이나 수정한 장면이 이거였어.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지. 이 사진 너무 좋지?"
자료를 보며 예의상 질문을 던지던 내게,
평소 말수가 적던 감독님은 감정을 가득 실어 답을 해오셨다.
이건 사랑이다.
일에 대한 사랑, 자부심,
그리고 열정.
그러지 않고서야 몇 년 전의 일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그때의 순간을 끄집어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감독님은 말끝에, 이렇게 세팅하느라 힘들었는데.
이 사진 한 장에 다 위로받았다고 했다.
나는 언제였더라.
내가 하는 일로 위로받고, 울고, 웃고 했던 적이.
20대 때는 그랬던 것도 같다.
일이 너무 좋았고, 일로 만난 사람들이 좋았다.
일이 곧 나 같았고, 내가 곧 일 같았다.
하지만 뜨겁게 좋아하니, 크게 데었다.
일과 사람 사이에 거리 두기가 서툴렀고,
미숙한 내가 상처를 준 적도 있고,
어리숙해서 크게 상처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점점 나는 미적지근한 사람이 되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일을 하되, 적당히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주는 일도 점점 줄었지만,
뜨거운 시절의 나도 점점 사라져 갔다.
이런 모든 것이 연차가 쌓여서,
나이를 먹어서, 당연한 거라 생각했지만, 당연한 건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처음처럼 워드 파일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동안 돈 되는 글 아니면 쓰지도 않았던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해 적어 내려간다.
기뻤다,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좋아졌다는 것이.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것이.
열정도 노력하면 조금은 다시 생기는 거란 걸,
밥벌이 현장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