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마, 아빠를 만났다.
"반찬 많이 하지 마! 냉장고 꽉 차서 둘 곳도 없어!"라는
나의 엄포가 무안할 정도로 엄마, 아빠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셨다.
식탁에 올려 하나하나 풀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엄마표 반찬이 한가득이다.
엄마가 힘들까 봐 반찬을 해오지 말라고 사양했으면서도
어떤 반찬이 있을지 궁금해서 다급하게 열어보는 내 손길이 들떠있다.
오이소박이, 깍두기, 콩자반, 나물, 오징어조림,
북어조림, 불고기, 장조림, 사골국.
어릴 때부터 즐겨 먹던 엄마 손맛 가득한 반찬들과
유튜브를 보고 만들어 봤다는 연잎밥까지.
언제부턴가 엄마는 엄마가 잘하는 반찬 말고,
유튜브를 보며 새로운 메뉴를 하나씩 연구해서 만들어 주시곤 한다.
번거롭게 왜 그렇게 하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하면 더 잘 먹을까 싶어서 그런다는 엄마의 대답.
사랑이었다.
매일 사랑한다고 낯간지러운 말을 속삭이지는 못 해도,
더 잘 먹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엄마의 사랑.
싸 오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반찬 뚜껑을 열어,
반찬을 한가득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으며 말했다.
"엄마, 엄마 없으면 난 이 반찬 맛은 다신 못 느끼겠다. 그렇지?"
내 말에 다 안다는 듯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해줄게. 천천히 많이 먹어."
그런 날이 있다.
그날이 그날 같은 그런 날 중에
집에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멀고 힘든 날.
배는 고프고, 지치고, 기운도 없는 그런 날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씻은 듯이 낫곤 했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엄마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게 엄마표 반찬은 소리 없는 조용한 응원이었다.
엄마 '빽'으로 든든하게 밥을 먹고 나면
세상과 맞붙을 이상한 용기가 생긴다.
그런 날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 하던 애교를 떤다.
"엄마, 이번 반찬엔 뭘 넣었길래 이렇게 맛있어? 역시 엄마 반찬이 최고야!"
나는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먹고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