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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n 03. 2023

8. <사랑과 전쟁>, 그리고 막국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 편 들어줘야지!”


오밤중에 좋아하는 동생 앞에서 화를 냈다. 화를 내면서도 알았다. 지금 내가 상당히 찌질하다는 걸.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그 동생과 나, 그리고 내 남편은 꽤 친한 사이였다. 우리는 일상을 함께 했다. 아침에 동생과 같이 운동을 하고 우리 집에 와서 남편과 셋이 점심을 먹곤 했다. 같이 커피를 마시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가끔씩은 동네 맛집에 가서 외식을 하기도 했다. 우리 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맥주 마시며 티비도 자주 봤다. 그래서 그 동생이 지금 혼자 살고 있는 내 남편이 걱정됐었나 보다. “어제 오빠한테 전화를 해봤는데, 오빠도 상태가 좋진 않더라. 좀 안쓰러웠어.“ 동생이 그 말을 하자마자 표정관리가 안 됐다. 난 동생이 왜 남편에게 안부 전화를 했는지 알고 있었다. 남편과 친한 사이기도 했고, 또 본인이 예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아는데도 이미 목소리는 떨려오고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 했다. "니가 왜 걔한테 전화를 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날 그 동생 앞에서 엉엉 울고 마음이 많이 나아졌다. 동생은 내가 그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계속 괜찮다고 해서 마음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언니가 울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동생은 꺼이꺼이 우는 나를 보고 좀 귀엽다고 했다. 나는 그 동생에게 참 빚진 게 많다.      


미..미안하다 동생아 ㅋㅋㅋㅋ




“내일 어디서 만나?”

“In front of the 법원.”     


남편에게 이혼서류를 건넨지 3주쯤 지난 날이었다. 동네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다음 주 금요일에 법원 앞에서 만나자는 문자였다. 그 문자를 받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사실 나는 남편이 이혼을 결정하는 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결정되었기에 마냥 남편의 의사를 기다리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 복닥거리는 마음을 안고 있는데 남편에게 문자가 온 것이다. 그리고 약속했던 그 금요일이 다가왔다. 보통 남편과 어디를 갈 때는 집 앞에서 만나 같이 차를 타고 간다. 뭔가 법원을 가는데 같이 차 타고 가는 건 이상하니 어디서 만날 건가 먼저 물었다. 내 문자에 남편은 “In front of the 법원.”이라고 답을 했다. 그 문자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무슨 노래 제목 같네, 라고 생각했다.     


법원 앞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아주 살짝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 내 마음이 딱 이 비 같다고 생각했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는 하는 상태. 법원에 미리 답사를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이 이질적인 회색빛 건물에 압도당했을지도 모른다. 시간강박이 있는 남편은 왠일인지 약속시간을 넘겼다. 한 10분쯤 지나 저 멀리서 헤어스타일을 바꾼 남편이 오는 게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남편은 나를 쓱 보더니 엄청나게 빠른 걸음으로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가방을 챙겨 남편 뒤를 쫒아갔다. 아버지가 항상 이렇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녔지. 아버지와 어딜 가면 가족들은 늘 아버지의 빠른 걸음을 쫒아다니기 바빴다. 남편은 그런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남편이 우리 아버지 같은 빠른 걸음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갔다.



남편은 이곳을 와봤다고 했다. 나에게 문자를 보냈던 지난 금요일. 사실은 이혼서류를 접수하러 이 법원에 왔다가 빠꾸를 먹었단다. 이혼서류를 접수하려면 반드시 부부가 같이 와야 한다. 그 사실을 모르고 혼자 왔다가 거절을 당해 나에게 그날 문자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신청까지 해봐서 그런지 남편은 법원의 지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쏜살 같은 걸음으로 이혼서류를 신청하는 곳까지 왔다. 그곳은 마치 은행 같았다.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순서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우리 앞에 몇 커플이 있었다. 한 50대쯤 되어보이는 부부가 같이 이혼 서류를 쓰고 있었다. 아내는 연신 남편에게 애교섞인 목소리로 “이건 뭐라고 써야해?”라고 물었고 남편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약간 의식하면서 아내에게 무뚝뚝하게 답을 하고 있었다. 대체 저 부부는 왜 이혼을 하는 건지 의아했다.      


순서가 왔다. 담당 공무원이 서류를 받고 나와 남편의 신분증을 가져갔다. 무슨 전입신고를 하러 온 것 같았다. 남편과 관공서를 가본 기억들이 떠올랐다. 딱 이렇게 생긴 관공서에서 혼인신고도 하고 서류도 떼고 전입신고도 하고 여행 가기 전에 국제면허증도 발급받았다. 우리는 참 일처리를 함께 하는 걸 좋아했다. 이사라도 가는 날에는 어찌나 호흡이 척척 맞던지. “넌 은행가서 잔금처리하고 난 전입신고 하러갈 테니까 끝나면 중간에서 밥 먹자.“ 생각해보니 이 맘때쯤 항상 이사를 다녔다. 전세 계약 만료때마다 이사를 다녀서 남편과 함께 살았던 동네도 너다섯곳은 된다. 그 기억이 떠올랐다.      





서류접수는 간단했다. 둘 다 준비성이 철저한 스타일이라 뭔가 빠뜨리거나 잘못 썼을 리가 없었다. 공무원은 이제 서류 접수는 다 되었고, 7월에 정해진 두 날짜 중 하루에 둘이 다시 같이 법원에 와서 마지막으로 합의를 하면 이혼이 된다고 안내해주었다. 우리는 그 안내 종이를 들고 다시 법원 밖에 나왔다. 법원 밖은 무슨 도로 공사를 하는 건지 공사 소리로 시끄럽고 차도 막혔다.      


“오토바이 어디다 대 놨어?”

“너 밥은 먹었냐?”

“아니.”

“밥 먹고 갈래? 너 괜찮으면.”

“그래, 그러자.”     


남편은 지난 주에 혼자 왔을 때 갔던 막국수집이 있다고 했다. 법원 맛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막국수집에 앉아 주문을 하고 둘이 마주보고 앉았다. 자연스레 물을 세팅하고 젓가락도 세팅했다. 심각한 상황인데 또 한편으로는 웃겼다. 젠장. 막국수는 맛있었다. 남편과 함께 살 때 가끔 우리 엄마 아빠를 모시고 넷이 가던 막국수집이 있었다. 그 막국수집도 생각났다. 심지어 수육까지 한 접시 시켰다. “이혼하는 것치고 너무 잘 먹는 거 아냐?” 나도 너스레를 떨었다. 가족 얘기도 하고 그간 서로 사는 얘기도 했다. 숨을 쉴 것 같았다.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테라스에 앉아 라떼를 시켜놓고 두시간 남짓을 얘기했다. 뭐랄까. 회포를 푸는 느낌이었다. “너 얼굴에 빨간 거 그거 왜 그런 거래?” 남편이 물었다. “얼굴에 열이 많아서 혈관이 막혔단다.” “홧병이네. 병원은 가봤고?” “어, 약 먹고 있어. 근데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 잘 안 낫는데.” “너 그거 이혼하면 다 나을 수도 있어.” “나도 그럴 것 같다.” “근데 머리는 또 왜 그래? 마음고생의 흔적이야?” “그렇지. 난 뭐 괜찮았을 줄 알았냐?” “뿌리염색은 왜 안하고?” “머리가 너무 상해서 지금 좀 쉬어줘야 된대.” “그래. 근데 너 얼굴 빨간 거, 나름 인디언 부족 같고 매력 있어.” “고맙다.” “그래, 너 타투 흐려진 것도 리터치 받고 그래.”     


그래, 한때 내 타투 가지고도 대판 싸웠었지. 내가 어느 날 미쳐서 갑자기 타투를 받고 왔는데 보수적인 남편이 그걸 받아들이질 못해서. 나중에 남편이 내 꽃모양 타투와 꽃 사진을 같이 찍어 보내줬다. 그때 남편의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그날도 그랬다. 이제 너도 내 흰머리랑 얼굴 빨개진 게 눈에 들어오는구나. 남편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남편의 미안한 마음은 느껴졌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간 그것 때문에 내가 그리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편이 그 동생에게 연락이 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동생이 연락해서 뭐라 했냐고 물었더니, “아 오빠, 그래서 이제 어찌 살낀데!”라는 말만 계속 하다가 끊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너무 그 동생다워서. 혼자 있는 남편에게 그런 안부 전화를 해준 게 고마웠고, 그날 왜 내 편 안 들어주냐고 그 동생에게 화를 낸 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알았다. 왜 내 마음이 풀렸는지. 나도 아프고 힘들다는 걸 누가 알아주길, 특히 남편이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바랬던 것이다. 그걸 남편이 알아봐줘서,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머쓱하게나마 그 미안함을 표현해서 고마웠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도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남편이 이제서야 내 흰머리와 빨간 피부가 보였듯, 나도 이제서야 남편의 부은 얼굴과 불안한 마음이 보였다. 아니, 보인 게 아니라 느껴졌다. 처음으로 느껴졌다.      




“너 오토바이 타는 거 보고 갈게.” 남편 오토바이 앞에서 마지막으로 담배 피는 걸 봤다. 7월 10일에도 이 막국수집에서 막국수 한 그릇 하자고 했다. 남편이 순간적으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이내 뒤로 뺐다. 그리고 말했다.      


“악수는 이혼한 날 하자.”     


난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다. 남편의 육중한 오토바이가 부웅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걸 봤다. 하늘을 봤다. 언제 그랬냐는 듯 비는 그치고 해가 쨍쨍 났다. “인생은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메디야.” 영화 조커의 대사가 떠올랐다. 여전히 망할 체끼는 나를 괴롭힌다.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도 순간적으로 비현실감이 몰려와서 잠이 벌떡벌떡 깨곤 한다. 그런데 이제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랑은 멜로 영화가 아니라 <사랑과 전쟁>이다. 내가 이혼을 하며 절절하게 느낀 삶의 진실이다. 현실의 사랑은 아름답지 않다. 이혼준비를 하면서 이혼변호사의 웹툰을 자주 봤다. 거기 나오는 말도 안 될 것 같은 사연들이 현실이더라. 아니 현실은 픽션보다 더 할 때도 많더라. 난 이 모든 이야기가 진흙탕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아니 당시에는 내가 그걸 바란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걸 바랬다. 그래서 힘들었다. 한치만 삐끗해도 진흙탕 싸움이 되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길었던 고통의 시간 끝에, 악수 정도는 할 수 있는 관계를 지켜냈다. 서로의 흰머리와 부은 얼굴쯤은 보아줄 수 있는 관계는 지켜냈다. 이혼이건 뭐건 간에, 내가 그간 바란 것은 이것이었나 보다. 남편에게 전화해준 동생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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