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May 17. 2023

7. 이혼말고 이별

분노와 증오, 불안과 혼란, 우울과 허무가 지나간 자리에는 슬픔이 남는다. 지난 글을 쓰고 알았다. 부부란 무엇인가? 부부는 가족이다. 가족은 무엇인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다. ‘가족’이란 이름, ‘부부’란 이름을 벗겨내면 함께한 시간이 남는다. 나 혼자서 의식에 가까운 ‘이혼식’을 치르면서 나와 남편의 관계에 ‘결혼’, ‘부부’라는 이름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있다. 아마도 그 마지막 단계가 지난주에 홀로 가정법원에 갔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곳에서 알았다. 결혼은 법을 매개로 한 계약일 뿐이구나. 계약을 하면 계약서를 쓴다. 계약서의 마지막에는 항상 이런 조항이 있다. “이 계약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제기되는 소송은 소재지를 관할하는 법원을 1심법원으로 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계약이기에 그와 관련된 분쟁(혹은 파기)이 발생하는 경우 관할 법원에 가야 한다. 결혼은 서류로 시작해서 서류로 끝나는 게 맞다.


그날 내가 자존심이 상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정말 이게 다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나니 그 씩씩대는 마음은 사그러들었다. 다시는 내 사랑을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 다짐을 하고나니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 별거를 하기 전, 남편이 나에게 뜬금없이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집에 오니 남편은 그 장면을 보며 술을 마시며 눈물 짓고 있었다. 집에 막 들어온 나에게 이걸 좀 보라고 했다. 이혼한 아내에게 남편이 편지를 쓰는 장면이었다. “Dear Catherine”으로 시작하는 편지. 주인공이 그 편지를 읽을 때 남편이 “Dear 혜원”이라고 했다. 나는 그 편지가 남편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걸 알았다.


왜 그랬을까. 지난 글을 쓰고 갑자기 그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녀Her>라는 영화. 오래 전에 남편과 같이 봤던 영화였다. 그 영화를 봤다. 왜 남편이 그 영화에 꽂혔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눈물이 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고 온라인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는 내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함께 게임을 하던 친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 “아무 일도 없어.”라고 답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말을 하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서둘러 게임을 끊고 침대에 누워 미친 듯이 울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토하는 것처럼 울었다. “이제 진짜 끝났구나.”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참을 울고 남편에게 줄 편지를 썼다. 사실 남편에게 줄 편지는 지난달에 미리 써 놨다. 그 편지와 함께 이혼서류를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편지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서랍에 넣어 놨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는 날 다시 쓰려고. 그날이 그날이었다. 편지를 쓰면서 알았다. 나는 남편에게 이혼의 편지가 아니라 이별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는 것을. 계약의 끝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의 끝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을. 우리는 부부이기 전에 친구였으니까. 이것은 이혼이기 전에 이별이니까.



편지를 다 쓰자 새벽 4시였다. 이 편지와 이혼서류를 집 우편함에 넣어놓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여름이라 새벽에도 춥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대충 입고 나와서 그런지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집 앞에 도착했다. 우리 집은 4층이다. 4층의 불이 꺼져 있는지 보았다.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 그 자리에서 카톡을 하면 남편과 강아지가 베란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들곤 했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우편함에 편지와 서류를 담은 폴더를 넣어 놨다. 갑자기 주차장에 가보고 싶었다. 지하 주차장에 터벅터벅 내려가서 나와 남편이 같이 타던 차를 봤다. 남편의 오토바이도 봤다. 웬일로 오토바이에 흙먼지 같은 게 잔뜩 묻어 있었다. 함께 타던 차를 한번 만져봤다. 이 차의 역사도 12년이다. 그 차를 타고 연애 때 데이트를 하고 결혼하고 나서 시댁이니 친정이니 많이 오갔다. 그 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이런저런 공원을 많이 나다녔다. 이 차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했다. 주차장에서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4층의 불이 켜졌다. 믿기지가 않아서 1층부터 일, 이, 삼, 사 하면서 몇 번을 세어봤다. 몇 번을 확인해도 우리집이 맞았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 안 자?” “응.” “나 지금 집 앞이다. 편지 주려고 왔어. 내려올래?”


몇 분이 지나자 남편이 내려왔다. “편지야, 서류야?” 나를 보더니 대뜸 물었다. “편지랑 서류다.” 대답했다. 남편이 서류를 훑어봤다. 서류를 잡은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건 이따가 보고 얘기나 좀 하자.” 편의점에서 물 하나를 사왔다. 집앞 편의점에는 앉을 자리가 있다. 강아지를 산책 시키고 매일 거기에 앉아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남편은 담배를 피곤 했다. 그 익숙한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뭘 우냐?” 남편이 말했다. “이별이 슬퍼서 운다.” 난 대답했다. 남편은 요즘 불교에 심취해 있는 것 같았다. 불교 이야기를 하다가 가족 이야기를 했다. 장모님, 장인어른은 이 상황은 아시냐고 물어봐서 아신다고 말했고, 시댁 어른들은 어떠시냐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모르신다고 했다. 남편은 장모님을 걱정하고, 나는 시어머니를 걱정했다. “어떻게 하려고?” “알아서 할게.” “그래, 알아서 해라.” 그렇게 가족 이야기도 끝났다.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협의이혼과 이혼소송에 대한 이야기. 재산분할과 강아지 양육, 집과 이사 이야기.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아니라 이야기는 별다른 마찰 없이 흘러갔다.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까맸던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남편은 상징과 허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야, 악수나 한번 할래?” 내가 대뜸 물었다. 마지막 순간을 말로 채우고 싶진 않았다. 남편은 싫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새벽 공기가 추웠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말을 했다. 남편은 세 시간 뒤, 시아버지 생신 행사에 참석하러 차를 몰고 무주로 떠난다고 했다. 운전 조심하라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뒤돌아서서 혼자 사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하늘은 밝아져 있었다. 집에 가는 길,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다. 새벽 여섯시였다. 영화를 보고나서 울었던 탓에 눈이 시리고 목구멍이 깔깔했다. 암막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쳤다. 눈을 감았다. 이별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가정법원과 추억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