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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May 10. 2023

6. 가정법원과 추억 사이

지난 주에 법원에 갔다 왔다. 혼자서. 아직 나는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명시적으로 말을 한 상태가 아니다. 우리 사이는 끝났다고만 말을 했다. 나도 이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무작정 감정에 휩싸여 이혼하자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여전히 이혼이 무서운 어느 날이었다. 미래의 불행이 무섭다면 그 불행을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라는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뭐랄까. 불행을 일시불로 맞으면 파산할 수도 있으니까, 할부로 나눠 조금씩 감당해보는 방법이랄까. 사실 이 연재도 그렇다. 미래의 공포를 글 하나, 글 하나를 쓰면서 나눠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불현 듯 법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원이 공포의 대상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이혼의 공포가 관념적으로 묶여 있는 공간이기는 하니까.



나의 관할 법원을 찾아 갔다. 법원의 느낌은 좋지 않았다. 어린 시절 청소년 대표로 정부에서 잠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정부청사의 느낌과 같았다. 그때는 그 고압적인 건물에 출입증을 내고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어깨에 뽕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건물과 나를 동일시했으니까. 그런데 이혼을 하려고 사전답사(?)하러 간 법원의 느낌은 싫었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회색빛 건물. 204호에 이혼조정실이 있었다. 이혼을 하는 부부는 저 방에 가서 이혼서류를 낸단다. 그리고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경우는 3개월, 없는 경우는 1개월의 조정 기간을 지나, 다시 그 방에 가면 판사가 이혼을 ‘허가’해준다. 법정에서 재판 받는 느낌은 아니고 부부 사이에 별 다른 의견 불일치가 없으면 행정 처리 하듯 도장을 찍어준단다. 법원에 오래 있지는 않았다. 나와서 산책을 했다. 기분이 묘했다. 무섭고 긴장되었나? 그것보다는 화가 났다. 정확히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 법원에 가서 나는 결혼의 민낯을 봐버렸다. 그리고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혼인신고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법원은 아니었고 구청에 가서 신고를 했다. 혼인신고를 하고 나와 기념으로 주민등록등본을 한 부 뽑아봤다. 내 이름 아래에 남편의 이름이 함께 뜨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이제 안다. 그 좋았던 감정의 정체를. 그건 안도감이었다. 이제 나는 평생 혼자 될 일은 없겠다는 안도감. 그걸 무려 정부가 보장을 해주니, 내 이름 아래 남편 이름이 함께 적히는 것을 보고 기뻤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기뻤던 만큼, 법원 앞에서 자존심이 상했다. 관계를 법에 의탁한 대가는 컸다. 관계의 지속을 법에 의탁했으니, 관계의 끝도 법에 의탁해야 했다. 다 큰 성인이 관계를 끝내는 것을 판사에게 허락 받아야 한다니. 참 우스꽝스러웠다.


결혼은 서류로 시작해서 서류로 끝난다.


물론 이혼 재판이 완전히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약자를 어느 정도 보호해야한다는 측면에서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 가족에 관련된 법이라는 것이 그렇다. 사랑이 말라버렸기에 위자료니 귀책사유니 양육권이니 양육비니 두 사람 관계 속의 갈등을 법의 심판에 맡기는 것 아닌가. 부부가 이혼할 수 있어도 자녀를 사랑한다면 양육권이니 양육비니 하는 문제를 법원에 맡길 리는 없다. 이미 이혼 문제만으로도 자식에게 한 없이 미안할 테니까. 부부가 이혼할 수는 있어도 한때 사랑했던 기억이 있다면, 위자료니 재산분할이니 귀책사유니 아웅다웅하느라 재판정에 설 리가 없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만 있어도 그런 문제는 법원에 의탁하지 않고 둘이서 결론지을 수 있다. 사랑이 없는 공간이었다. 법원은. 그 회색빛 죽어있는 건물의 느낌은 ‘사랑-없음’의 색이었다.




나는 남편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결혼하고 몇 년 지나, 우리의 사랑은 끝났음을, 아니면 애초에 밀도가 낮았음을 받아들였지만, 우정은 남아 있다고 믿었다. 사랑하진 않아도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믿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길 바랐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건 나의 나약함이었다. 철학을 배우며, 사랑이 오래 지속되는 유일한 방법은, 두 사람이 끊임없이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 뿐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사랑을 지속하는 것은, 같은 두 사람이 계속 같은 사랑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계속 달라지는 두 사람이 계속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끝맺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사랑을 남편과 하고 싶었다. 남편과의 관계를 오래도록 지속하고 싶었으니까. 그건 이혼이 무서워서이기도 했지만, 남편과 함께 지내온 시간이 소중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에 간 날 알았다. 남편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혼을 한 뒤에야만 열린다는 걸. 법에 의탁한 우정 같은 건 없다. 나는 무서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할 때 남편과의 관계를 법에 의탁한 그 부분만큼 사랑도, 우정도 아니다. 그 사랑도 우정도 아닌 부분이 이혼하면 여실히 드러날까봐 무서웠던 것이다. 최근 나를 휩싸고 있던 허무감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혼을 하면 나와 남편의 길었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어쩌면 내 머릿속 주마등은 그 허무함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허무한 것은 없다. 허무한 관계도, 허무한 삶도 없다. 관계도, 삶도 항상 ‘있음’으로 가득 차 있다. 다만 내가 어떤 있지도 않은 이상향을 바랬는데 현실이 그에 부합하지 못하면, 그 결핍을 내 정신이 ‘없음’으로 느껴 허무하다고 느낄 뿐이다. 주마등에 허무함은 없다. 주마등은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순간들로. 나와 남편은 오랜 친구였다. 아무리 결혼의 본질이 ‘계약’이라고 한들, 어떻게 한집에서 매일 살 부대끼며 함께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이야기하고 울고 웃었던 사람이 비즈니스 파트너와 같겠는가. 그는 나의 오랜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이제 우리의 우정도 관계도 끝이 났다. 그걸 안다. 요즘 베르그손의 철학을 공부한다. 수업 시간에 어떤 매력적인 존재를 만나면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마치 음악처럼 동시에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그걸 경험해본 적이 있다. 매력적인 존재는 사랑의 존재다. 사랑의 존재를 만나면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연주된다. 그리고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동시에 연주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관계는 그 관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연주된다. 그걸 알기에, 나와 남편의 관계는 끝났다는 걸 안다. 나는 더 이상 그 관계의 현재와 미래가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만 남은 관계다. 현재와 미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미래는 욕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 미래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건,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망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으면 현재가 없다. 욕망에 따라 미래, 현재, 과거는 동시에 움직이니까. 남편과의 관계에는 미래도, 현재도 없다. 이미 나와 남편은 삶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같은 공간에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음악을 연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의 나’와 ‘지금의 남편’의 관계는 끝났다. 우리가 다시 친구가 된다면, 그건 ‘다른 사람이 된 나’와 ‘다시 사람이 된 남편’이 새로이 만나 새로운 우정을 쌓는 것일 테다. 그리고 그 희박한 가능성은 나와 남편 사이의 법적 고리를 끊었을 때에만 비로소 열린다. 무엇에도 의탁하지 않은 채 자연스레 피어나 애정으로 가꿔나간 관계만이 진정한 우정이자 진정한 사랑일 테니까. 알고 있다.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번 어긋난 관계가 다시 마주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것이 남편과의 소중했던 시간을 정신승리하지 않은 채 긍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는다고 꼭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지 않으면 태어날 수 없다. 이제 길었던 관계를 끝맺는다. 소중한 관계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회한은 없다.


안녕,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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