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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n 30. 2023

10. 아이를 낳고 싶다.

아이를 낳고 싶다. 이혼을 열흘 남겨둔 시점에 드는 생각이다.


몇 달 전이었다. 이혼에 마음을 굳히고 아마 남편에게서 법원에서 만나자는 연락까지 받은 뒤였을 것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려고 동네 쇼핑센터를 하염없이 배회하는데, 뜬금없이 아기 신발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만져보며 진짜 귀엽고 이쁘네 생각하고 쇼핑센터를 나왔는데, 집에 가는 길에 이상하게도 그 신발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오늘 저 신발을 사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오토바이를 돌려 다시 쇼핑센터에 들어가서 그 신발 한 켤레를 사왔다. 집 책장에 가만히 놓아두고 한참을 쳐다봤다. '나 아이를 낳고 싶구나.'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이혼하는 판에 아이를 낳고 싶어지다니. 그 아기 신발은 지금도 내 책상 옆 책장에 가만히 놓여 있다. 저 신발을 신을 아이는 내 삶에 나타날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참 아이를 낳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친언니가 비혼주의를 꿈꿀 때, 나는 대가족을 꿈꿨다. 어린 시절 티비에서 보던 원주민 공동체가 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와 너무 반대되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결핍이 생겼던 것일 테다. 옷도 거의 입지 않고 아이도 많이 낳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고 밤이 되면 밥을 해서 서로 나눠먹고 모닥불이 꺼질 때까지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패밀리맨에 끌렸던 것 같다. 이 모든 걸 버리고 정말 원주민처럼 살 용기는 없었으니, 대충 자본주의 사회에서 허용되는 수준에서의 따뜻함을 바랬다. 어느 SUV광고에서 나올 것처럼, 주말이면 토끼같은 아이들 셋을 큰 차에 태워 시골에 가서 고기도 구워 먹고 물장구도 치고 깔깔거리며 웃는 그런 따뜻함. 물론 이제는 그 SUV 광고는 앞뒤 모두 자르고 필터 먹여 뽀샤시하게 편집한 인스타 피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그런 SUV차에 캠핑용품을 잔뜩 실어 캠핑을 가도 천막 치는 걸로 싸우다가 싸한 분위기로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돌아오는 게 현실이니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참 나도 꿈을 많이 이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가장 원주민 공동체에 가까운 공동체에서 정말 옷도 거의 입지 않고(ㅋㅋㅋ)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고 밤이 되면 서로 모여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지내고 있으니까. 이제 따뜻함에 대한 결핍이 그리 크진 않다.


그런데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글쓰기 수업 때 스승이 말해주었다. 그건 그냥 여성으로서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내가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을 '낙태로 인한 결핍'이니, '사랑의 대상을 쉽게 찾고 싶은 게걸스러움'이니 하며 이리저리 분석해대자, 스승이 그건 그냥 여성으로서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혜원이는 여성성을 너무 오래 억압해와서 그걸 모르는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 말에 나는 주르륵 눈물이 났다. 스승이 덧붙였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나는 네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 그 말이 마음 한 구석에 어떤 주문처럼 걸려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고 싶다.





참 우습다. 결혼 생활 내내 아이는 계속해서 어긋나는 어떤 문제 같았다. 신혼 때, 남편은 아이를 원했다. 사실 남편도 아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가 시누이의 아이를 보고 마음이 동했던 것 같다. 그때는 내가 아이를 원치 않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잘 났다는 걸 증명하려고 삶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던 시절이었다. 그 쓸데없는 일이 내 삶의 목표였기에, 어린 시절부터 아이를 갖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지금은 아이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망해가는 회사.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는데, 지금 여기서 애까지 생긴다면 포기해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때 애가 안 생긴 건 천만다행이다. 만일 그때 애가 생겼다면, 나는 나의 꿈을 너 때문에 포기하게 되었다며, 지가 제대로 못 산 걸 괜히 애 탓으로 돌리는 정말이지 모자란 엄마가 되었을 테니까. 사업을 접고 방황을 하다가 철학을 만나, 세상 사람들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은 욕망만큼 쓸데없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 나는 다시 아이를 낳고 싶어졌다. 그때 남편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우유부단한 상태였다. 그때 남편은 자기 욕망에 더더욱 솔직하지 못했기에 사실은 아이를 원치 않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직면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지금보다 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내가 아이를 낳고 싶으니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렇게 한 1년을 임신 시도를 했다. 임신은 잘 되지 않았다. 몇 개월 난임 치료를 받다가 그만뒀다. 난임 치료를 할 때마다 기분이 너무 안 좋아졌다.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일들을 인위적으로 할 때 느껴지는 자괴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 영혼을 닳게 하는 감정을 계속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만 두었다. 그리고 남편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뒤늦게 사춘기가 온 남편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모범생’에서 조금 벗어나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아이가 생기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나도 ‘모범생’으로 평생을 살다가 삶을 즐긴다는 무엇인지 처음 알았을 때, 그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으니까. 나라도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이 실컷 놀았으면 했다. 지금까지 못 놀았으니 이제라도 놀았으면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동정심sympathy’이긴 했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이랄까. 그렇게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은 다시 마음 한구석에 밀려났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두 번 어긋났다. 한번은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싶다는 내 탐욕 때문에. 한번은 모범생으로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한 남편의 억울함 때문에. 탐욕과 억울함으로 가득 찬 집에 사랑이 꽃필 리 없었다. 탐욕과 억울함은 둘 다 ‘나’만 보는 마음 아닌가. ‘나’로 가득 찬 곳에 ‘너’가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이가 생기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나도 남편도 ‘너’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토양이 갖춰져야 싹이 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열흘 뒤면 이혼을 한다. 여전히 내 책상 옆에는 아기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다. 나는 길가에서 아이들을 보면 참 예쁘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엄마 아빠를 봐도 참 예쁘다. 다들 힘들어 보이지만 그들이 짓고 있는 미소는 참 예쁘다. 나는 사랑하는 이와 아이를 낳고 싶다. 서른여덟 살 이혼녀의 꿈은 어이없게도 그것이다. 사랑을 하고 싶어 하트모양 목걸이를 샀던 때처럼 아이를 만나고 싶어 아이 신발을 샀던 것이구나. ‘너’를 사랑할 준비를 해야겠다. 아이는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 ‘너’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척박한 토양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 채 오래도록 음습한 땅속에 썩어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아이도 언젠가 다른 토양을 만나면 아름답게 꽃필 수 있겠지만, 내가 토양이 되고 싶다면 아이가 싹을 틔울 수 있는 토양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 음습한 땅 속에서 썩어 가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나는 이제 좀 ‘나’를 줄이고 싶다. ‘내’가 줄어든 자리에 ‘너’가 찾아올 수 있도록. ‘내’가 줄어든 자리에 ‘너’가 찾아와 자연스레 숨 쉬고 움직이고 웃고 울고 꽃필 수 있도록. ‘너’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너’를 사랑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겠다. 언젠가 ‘너’가 찾아온다면 말해주고 싶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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