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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16. 2023

나는 왜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가?

『주체의 해석학』(미셸 푸코) 강독 후기

나는 왜 사람을 키우지 못할까? 오늘 하루 종일 맴돌았던 화두다. 아마 수업의 영향도 있고, 그 전에 스승과 잠시 나눈 사적 대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나는 2인자의 자리가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의 깜냥을 전혀 모르고 단지 멋있어 보인다는 허영 하나로 어설프게나마 작은 조직의 1인자의 자리를 맡아본 경험이 있어서 알게 된 것이다. 5년의 스타트업 경험이 나에게 남긴 가장 큰 깨달음은 ‘나는 리더는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자기인식이었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가다. 이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리더의 유일한 역할이다. 그렇다면 그 '방향'은 누가 제시할 수 있는가? 오직 '신념'이 있는 사람만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신념'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것이 '좋고(아름답고)' 어떤 것이 '싫은지(추한지)'에 대한 확고한 가치체계다. '신념'은 '철학'이다. 남이 좋다는 걸 좋아하고 싫다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자기는 어떤 것이 좋고(아름답고) 어떤 것이 싫은지(추한지) 본인만의 단독적인 가치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리더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삼성은 업계 '리더'가 아니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업계 '리더'인 이유다. 잡스는 적어도 자본주의 영역 안에서는 자신만의 가치체계/미의식을 구축해냈으니까. 그는 어떤 삶이 '좋고(아름답고)' 어떤 삶이 '싫은지(추한지)'는 고민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어떤 상품이 '좋고(아름답고)' 어떤 상품이 '싫은지(추한지)'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애플은 방향성(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신념'이 없었다. 어떤 상품이 좋고 어떤 상품이 싫은지에 대한 철학도 없었고, 어떤 삶이 좋고 어떤 삶이 싫은지에 대한 철학도 없었다. 그걸 스스로 구축할 힘과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나는 리더를 할 수 없는 인간이란 걸 스타트업을 접을 무렵 절절하게 깨달았다. 나는 스승이 '모든 구심점을 없애려는 건 인간의 본성에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해주어서 좋았다. 그 전에 내가 책이나 미디어, 대형 강연을 통해 만났던 인문주의자들은 '홀로 서기'를 너무 강조해서 절망스러웠다. 나는 리더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대뜸 홀로 서라는 거지? 나는 푸코가 진정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스승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말해주어서 안도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그 밑에서 군소리없이 잘 배울 자신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나 혼자 모든 것을 헤쳐나가라는 말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처음 내 스승을 만났을 때 드디어 나의 주군(웃긴 단어지만 내 감성은 그랬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난 저 사람에게 머리 숙이고 들어가 배운다고 생각했다. 나는 푸코가 말한 ‘스승 판별법’에 매우 동의했다. 나의 주군 판별법이랑 거의 비슷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명예를 쫒지 않는 사람. 그게 내 주군 판별법이었다. 그런 척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사는 사람. 스승은 예전에도 제자들과 생활을 공유했기 때문에 ‘저 사람은 찐이다’라는 걸 아는데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주군을 찾아서 너무 좋았다. 물론 내 주군은 한시도 나를 편하게 놔두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스승과의 관계, 그리고 그 스승이 이끄는 공동체에서 그 어디에서도 얻지 못하는 절대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나에게 종교적인 믿음을 주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스승과의 파르헤시아(정직하게 말하기) 순간을 기억해본다. 아마도 내가 철학을 배우는 곳에서 내가 스승의 말을 듣고 질질 짜는 장면을 한 번도 못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 운동을 하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내가 눈물을 흘렸던 순간이 전부 다 스승의 파르헤시아의 순간이었구나. 그 눈물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스승의 파르헤시아는 두 가지 느낌으로 온다. 위로로 올 때도 있고, 반발심으로 올 때도 있다. 위로로 올 때는 이런 느낌이다. “맞아요. 저 사실 그때 아팠어요. 근데 제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고 저도 몰랐어요. 선생님이 처음 알아주는 거예요. 엉엉.” 그리고 반발심으로 올 때는 이런 느낌이다. “저도 알아요. 저도 이런 제가 싫다고요!!!” 뭐랄까. 나는 스승에게 개기질 못하니 저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다. 그래서 걍 질질 짜기만 하는 것이다. 내가 의식하지 못했지만 무의식중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모습을 스승이 파르헤시아로 꺼냈을 때 보통 저런 반응이었다. 자기혐오가 찰랑찰랑 거리는 사람은 그걸 건드리면 반발심 혹은 외면으로 자기를 보호하는데(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는 반발도 외면도 못하니까 그 공황이 눈물로 터져버리는 거다. 그런데 그 눈물에는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있다. 그렇게 엉엉 울고 나면 자기혐오에서 감정이 좀 떨어져 나간다. 그러고 시간이 좀 흐르면 스승이 끄집어낸 파르헤시아에서 ‘수사’를 떼고 ‘진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그때 보통 나는 글을 쓴다. 사실 내 글은 스승이 나에게 말해준 파르헤시아를 나와 동일시 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내 사유가 없다. 스승이 사유(명상)를 촉발하는 ‘읽기’를 해주고, 거기서 눈물 한 바가지 쏟고 혼자 좀 있다가 “그래, 쌤 말이 맞다. 그 모습이 나 맞구나.”라고 파르헤시아의 내용을 나와 동일시하는 쓰기를 한다. 그리고나서 내 글을 거의 스무 번은 넘게 다시 읽는다. 그건 나르시시즘 때문이기도 한데 그보다는 그 글에서 드러난 내 모습을 스승의 눈으로 다시 읽어보는 것에 가깝다. 내 글을 스승의 눈으로 다시 읽어보며 그 글에서 드러난 내 부족한 지점(?)을 다시 스스로 파악해보는 것이다. 스무 번 넘게 읽으면 내가 쓴 글이라 할지라도 내가 논리로 비약하는 부분이 어딘지, 중언부언 핑계 대듯 부연설명이 많은 부분이 어딘지, 잘 몰라서 대충 퉁 친 부분이 어딘지, ‘고백’을 하다가 너무 쓰레기 같아서 도중에 끊은 지점이 어딘지 다 보인다. 스무 번 넘게 읽으면 그 글을 쓸 때의 정념은 어느 정도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읽기’를 하면 다시 ‘명상’의 지점이 보여서 또 ‘쓰기’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거기서 새로운 ‘자기 인식’이 생겨서 ‘자기 실천’으로 넘어가게 되기도 한다. ‘자기 실천’의 동력은 사실 부끄러움이다. 내 이미지는 이렇다. 위로의 파르헤시아와 죽비의 파르헤시아가 있는데, “너 이게 힘들었구나”라는 위로의 파르헤시아는 부정적인 감정의 응어리를 녹여서 자꾸만 늪에 빠지는 마음을 정화하고, “너 이런 사람이잖아!”라는 죽비의 파르헤시아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서 스스로 걸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느낌이다. 그리고 스승이 파르헤시아를 할 때 카이로스(기술)는 제자가 지금 늪에 빠져 있는지, 아니면 늪에서는 나왔는데 걸을 힘이 없는 건지를 잘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늪에 빠져 있는 애한테 걸으라고 하면 늪에 더 빠진다. 늪에서 나와 마른 땅에 서 있는데 걸을 마음이 없는 애를 위로하면 걔는 계속 땅바닥에 누워 있으려 한다. 스승은 정말 힘든 자리다.



이번 수업에서 파르헤시아를 배울 때 스승의 파르헤시아의 역사가 스쳐지나갔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카이로스(기술)는 실전에서만 연마되는 것이다. 나는 스승이 아직 스승-제자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파르헤시아를 했던 때도 보았고, 적절한 스승-제자 관계인데 그 제자가 너무 걱정되는 나머지 아직 그 타이밍이 아닌데 너무 빨리 파르헤시아를 했던 적도 보았으며, 적절한 관계에 적절한 시기에 파르헤시아를 했는데 단어 선택이 잘못되어 제자가 이상한 단어에 꽂혀서 파르헤시아 전체를 오독한 경우도 보았다(사실 이건 제자가 경청할 자세가 아직 안된 거긴 하다). 그런 순간마다 스승은 어떻게 했는가? 사과를 했다.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막말해놓고 ‘아 미안’하는 그런 가벼운 사과가 아니라, 진짜 사과를 했다. 어제 수업을 듣는데 스승이 파르헤시아를 했던 장면들과 아직 카이로스가 능란하지 않아 스승이 사과를 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사과했던 장면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 사과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 사과의 흔적들은 스승의 글에 남아 있다. 나는 그때 스승이 진짜 좋은 스승이라 느꼈다. 이상하게 어제 수업을 듣는데 그 ‘사과’들이 생각났다.


스승의 파르헤시아가 틀린 적은 없다. 스승이 파르헤시아를 했을 때 카이로스가 문제인 적이 있어도 그 파르헤시아의 내용 자체가 틀린 적은 없었다. 그게 전달이 되었든 안 되었든 돌이켜보면 스승의 말이 다 맞았다. 나에게 했던 파르헤시아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에게 했던 파르헤시아도 그랬다. 그야말로 스승의 입장에서는 “I told you” 대잔치다. 다만 제자들이 그걸 다 기억하지 못할 뿐.


맞는 말 해놓고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것. 심지어 자기를 위해 한 말도 아니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고심 끝에 한 말을 가지고, 그게 조금 빗나갔다고 또 사과를 하는 것. 스승은 정말 못해먹을 짓이다. 어쩌면 그 지랄맞은 짓을 하기 싫어서 아무도 스승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세상에는 스승도, 부모도, 어른도 없어서 모두가 다 애새끼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애새끼를 키울려면 스승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도 스승이 되고 싶진 않다. 스승은 너무나 지랄맞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사람을 키우질 못할까? 오늘 그 문장이 마음을 떠돌았다. 이제 나는 사적인 관계에서 내가 더 성숙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아직 상태가 안 좋은데, 세상 사람들의 상태는 더 안 좋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어찌 됐든 5년의 시간을 통으로 '자기배려'에 쏟았지만 세상 사람들 중 자기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와 다른 '나'가 되기 위한 실천에 그만큼의 시간을 쏟는(쏟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이제 내가 맺는 관계에서 ‘스승’은 아니지만 '성숙한 친구'의 역할 정도는 해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걸 깨닫고 나니 사람을 키우는 게 참 쉽지가 않다. 나는 사람을 못 믿어준다. 언젠가부터 알았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믿어주는 만큼만 클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과거의 삶에서 딱 거기까지 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우리 아버지(그 당시 내가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가 나를 그 만큼까지만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자식들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어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내가 크기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크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좌충우돌을 본인이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그 압박감으로 인한 짜증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 압박감과 짜증이 싫다보니 내가 좌충우돌 자체를 안 겪었으면 하는 거다. 그렇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크지 못하게 하는 테두리가 탄생하는 거다.



하지만 스승은 날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스승은 내 좌충우돌을 막지 않았다. 내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벼랑에서 뛰어내리고 머릿통 다 깨져서 울고불고 하는 걸, 스승이 미리 몰랐을까? 아니다. 그런 애가 있으면 내 눈에도 보이는데 스승 눈에 그게 안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스승은 ‘넌 준비되지 않았으니 뛰어내리지 마’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사고치고 다닐 때도 그랬다. 스승은 내가 사고칠 걸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하지 말라고 막지 않았다. 대신 사고치고 머리통 깨져서 질질 짜고 있을 때 옆에 와서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머리통이 아물었을 때 세상에서 제일 센 죽비로 엉덩이를 내려쳤다. 니가 싼 똥은 니가 치우라고 얘기했다. 근데 그 말도 엄격하게 하긴 했는데, 그게 나에 대한 비난도, “야, 니가 했으니까 니가 알아서 해”라는 외면도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니 삶은 니가 책임지는 거야’라는 따끔한 가르침을 주면서도 ‘난 네 곁에 있을 거다’라는 따뜻한 안정감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내가 가장 성장했던 시기는 다 그런 때였다. 내가 사고치고 머리통 깨지고, 나와 세상에 대한 현실 자각을 쎄게 한 다음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 스승에게 엉덩이 맞고 정신 차리고 어설프게나마 걷기 시작했던 시기. 그 시기의 반복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 나는 그렇게 컸으면서 나는 그렇게 사람을 키울 생각은 안 한다. 아버지처럼 좌충우돌을 막으려고 한다. ‘넌 준비가 안 되었다’는 말로.


내가 스승에게 참 고마웠던 순간이 있다. 내가 내 깜냥을 벗어난 사고를 치고 나서 스승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젠 제가 이럴 줄 몰랐어요." 스승은 이런 말을 되게 싫어한다. 뭔가를 하려면 알고 하라고 늘 말한다. 근데 이때 스승이 이렇게 얘기해주었다. 테두리를 벗어나 봐야 너의 테두리를 아는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은 테두리를 벗어나봐야 한다고. 그 말이 난 고마웠다. 니가 사고쳐서 내가 원형탈모가 오게 생겼다고 짜증내고 화내면서 나의 좌충우돌을 거세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철없는 제자는 그때 철이 든다. 자신의 테두리는 좌충우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부딪혀봐야 거기가 벽인 줄 안다. 최초의 눈이 안 떠진 상태면 누구나 그렇다. 아메바는 벽을 만나봐야 촉수가 생기는 거다. 근데 처음으로 벽을 만나 혼란 대잔치인 제자에게 네가 그 혼란을 일으켜 나도 힘들고 모두가 힘들어졌다고 좌충우돌 자체를 금지해버리면 그 제자는 이상한 철이 들게 된다. 사고는 안 치지만 다시는 벽 근처에도 안 가는 바보 같은 애어른이 된다. 스승은 내 좌충우돌을 긍정해주었다. “그게 니 벽이다. 니가 받아서 깨진 벽은 니가 정리하고 다시 쌓아라. 그리고 그 벽이 왜 네 벽인지 잘 살펴보고 다시 그 벽을 넘어라.”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한 번 벽에 가서 부딪치면 그 다음엔 풀파워로 벽에 가서 들이받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지가 아파서 그렇게 못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신중해진다. 다음 벽을 만나면 오래 준비한다. 오래 준비해서 좀 더 능숙하게 넘는다. 벽도 손상시키지 않고 주변에 피해도 덜 준다. 그렇게 제자도 철이 드는 거다. 스승은 내가 크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게 내가 그 누구도 못 키우는 이유다. 나는 그 사람이 크길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불편하고 힘들기 싫은 게 더 큰 사람이니까. 사랑은 수고로운 거다. 내가 얼마나 ‘수고’를 짊어질 수 있느냐가 나의 사랑의 역량이다. 나는 내가 힘들고 곤란하고 수고로워지는 게 싫어서 아무도 못 믿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누굴 키울 수 있겠는가.


요즘 나는 말이 너무 없어졌다. 영향력이 없을 때는 아무 말이나 씨부려도 됐다. 아무 영향도 없으니까. 그런데 ‘성숙한 친구’ 정도의 영향력이 생기니 말을 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그 관계에서는 작은 영향력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걸 안 다음부터 나는 말을 자꾸만 안 하게 된다. 왜 안할까? 책임지기 싫어서. 수고롭기 싫어서. 말해주어야 된다. 그 사람이 준비가 덜 되었어도, 앞으로의 좌충우돌이 훤히 보여도 할 말은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좌충우돌을 겪으며, 갖은 고통 끝에 촉수가 생기는 과정을 함께 해 주어야 한다. 그걸 함께하는 게 내가 힘들고 고통스럽기에, 나는 비겁하게 아무 말도, 아무 개입도 안 하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적어도 나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나는 온갖 좌충우돌을 다 하면서 커 놓고 다른 사람의 좌충우돌은 막으려고 하는 것은 배신이다. 이제 알겠다. 아버지는 사자였다. 그런데 너무 강박적인 사자라 자식들을 사슴으로 키웠다. 사슴으로 키워야 사고를 덜 쳐서 본인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모른다. 제때 사고를 안 치면 그게 쌓여서 나중에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사고를 친다는 걸. 오히려 사고를 많이 쳐본 놈은 사고를 별로 안 친다. 사고를 한번 칠 때마다 매우 겸손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사람이 점점 ‘진지’해지는 과정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좌충우돌로 큰 주제에 너의 좌충우돌은 거세하는 못난이는 되지 말아야겠다. 그건 참 비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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