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6개월이 되던 날, 그러니까 임신기간의 절반이 지나갔다고 축하 메시지가 앱으로부터 도착하던 날,
전남편은 이삿짐을 챙겨 집을 나갔다.
사전에 얘기가 된 이사였고, 아침부터 이삿짐 챙기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전날 호텔에 머무르다가 느지막한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천천히 빈 공간을 둘러보았다.
가전제품이나, 큰 가구가 빠진 흔적이 없어서 공간이 많이 생기진 않았지만 드레스룸에 한결 여유가 생긴 걸 보니 그제야 집 안에서 숨이 쉬어졌다. 집 대문만 열고 들어오면 숨이 가빠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잠글 때까지 식은땀이 흘러나왔던 것이 대체 언제부터였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숨이 쉬어진다고 느꼈던 그 순간만큼은 앞으로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드레스룸 한구석에 가만히 다리를 뻗고 앉아, 깊게 한 호흡, 한 호흡 숨을 이어갔다.
'이제, 드디어 끝난 거야. 다시 살아갈 수 있어. 잘 해낼 수 있어.
인생에 다시 이렇게 괴롭고 고통스러운 기간은 없을 테니까, 이제 다시 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어.'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고 나자 그제야 안도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앉아있다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정말 한참을 울었다.
길지 않았지만 지옥 같았던, 숨조차 편히 쉴 수 없었던 끔찍했던 날에 대한 괴로운 기억들이 눈물로 모두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임신 6개월 차가 된 날, 나는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기본적인 권리를 다시 되찾았다.
끔찍하기만 한 결혼 생활이었다. 결혼계획이 없던 연애시절, 왠지 모르게 잘 못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결혼 준비를 강행했고, 결혼식을 치르던 날 새하얗고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는 하객을 맞이하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내가 스스로 밧줄에 목을 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그저 교수대에 목이 매달린 채 발버둥 치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결국 유산의 공포를 몇 번이나 겪고 난 뒤 드디어 다시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아니, 아이와 둘이 남아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