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으로 살게 된 계기부터, 임신 그리고 출산까지 차근차근 글로 정리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갓 4개월이 넘은 아이를 키우면서 깨닫는다. 그러다간 절대 쓰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저 하루하루를, 그러다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는 그전의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 24시간 혼자 아이를 케어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한 부모 가정이든 아니든, 모든 엄마 혹은 아빠는 부모라는 이름을 잠깐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부부가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이라면, 한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깐 외출을 할 수 도 있을 거고, 친정엄마에게 혹은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몇 시간이나마 부모가 아닌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을 가진 사람이다. 출산 반년쯤 전 친정부모님은 이혼하시고, 27년을 함께 살아온 새어머니는 '너하고의 인연도 이제 끝이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지셨다. 친정아버지와는 가까이 살고 있고 최대한 육아를 도와주시려고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아버지도 혼자 4개월 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양육자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임신기간 중 이혼을 했다. 아이 아버지는 아이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고, 거의 원수지간처럼 아직도 서로를 물어뜯을 궁리만 하는 관계로 남아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분만실에서 혼자 아이를 낳던 순간부터 아이가 4개월을 조금 넘은 지금까지 하루도 육아에서 도망쳐 본 적이 없다.
그건 4개월 동안 한 번도 6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다는 뜻이고, 오늘 피곤하면 내일이라도 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 질만도 한데, 유난히 아이가 많이 울고 보채는 날은 아직도 아이를 끌어안고 같이 운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도망치고 싶어서.
그런데 도망칠 수가 없다.
그저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티다가 아이가 밤잠이 들면 이렇게 흐느끼면서 몇 줄의 일기를 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울지 말고 빨리 자야 몇 시간 후 일어나서 아이에게 또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아이가 주는 행복과는 별개로 도망치고 싶을 만큼 너무 힘든 날은 오만하게도 삶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너무 길다. 누군가 언제 이 삶이 끝난다고 슬쩍 일러준다면 차라리 더 쉽게 이 시간들을 버틸 수 있을 텐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벌을 받으며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죽을까, 죽어버릴까. 그러면 이 고통도 다 끝이난 다고 생각하다가도 아이가 울면 쩔쩔매며 달래주지 못하는 친정아버지가 생각나고, 싱크대에 담가둔 그릇에서 곰팡이가 필 때까지 설거지를 미루고 집안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전남편이 떠오르고, 술에 취해 나를 향해 빈정대던 전 시아버지까지 떠오르면 내가 죽으면 나만큼 아이를 생각하고, 달래주고, 먹이고, 사랑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또 왈칵 눈물이 난다.
내 아이가 혼자 유치원에서 허름하고 촌스러운 옷을 입고 멀뚱히 앉아있게 될지도 모른다, 매일 인스턴트나 먹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아무도 아이에게 우신을 가지고 데리러 가지 못할 수 도 있다는 상상들이 오늘도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도망치고 싶은 이유가, 도망칠 수 없는 이유가 되어 나를 또 하루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