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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진 Jul 28. 2021

소상히 뜯어보는 영국박물관 근무 기록들 (2)

제5장, 출퇴근 길과 음식들







1. 출퇴근 길의 풍경


런던은 도시의 구석구석 모든 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걷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근무 초반, 모든 것이 어색했던 나는 지하철,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런던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출퇴근 시간에는 모든 대중교통에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었다. 버스가 너무 타기 싫었던 나는 '조금만 더 걷고 멀찍이서 버스를 타자. 그러면 버스를 타는 시간을 조금 줄일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시작은 조금만 걸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어느덧 나는 출퇴근길 전부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런던의 지하철은 오래된 듯 하지만 오래된 것에서 오는 따뜻함과 투박함이 매력적이다.


런던 에인절 역(Angel Station)에서 박물관이 있는 블룸즈버리(Bloomsbury)까지는 내 걸음걸이로 약 40분 정도 걸렸다. 걷는 모든 길이 아름다웠고, 음악을 들으며 함께 도보로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걷는 것이 새삼 그들의 일부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날씨가 대체로 극단적이지 않고 선선하여 걷기에도 참 제격이었다. 그때 유독 (여자) 아이들의 <라타타>를 즐겨 들었는데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2018년 런던의 여름-가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 같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 당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글이 저절로 써진다)...!( ͡° ͜ʖ ͡°)!


런던의 비는 때때로 런던의 풍경을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특히 런던은 비가 자주 왔는데, 올 때는 성가시게 와서 귀찮았지만 때로는 런던의 풍경을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소나기가 내리거나 장마로 오랜 시간 습한 나날이 지속되지만 런던의 비는 비교적 내게 우스운 수준이었다. 성가실 정도로 흩뿌리듯 내리는 비는 우산을 쓰나 마나였고, 차라리 모자를 뒤집어쓰는 게 훨씬 속이 편했다. 그래도 가끔은 굵은 비가 내리기도 했는데, 이때부터였는지 난 한국에서 돌아와서도 늘 작은 양산 같은 우산을 꼭 가방에 넣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러셀 스퀘어(Russell Square)의 모습, 마치 BBC 드라마 셜록의 한 장면 같다.


해외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학생이 아닌 직업인의 신분으로서 온전히 내 힘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나를 정말 월등히 많이 성장시켜준 경험이었다. 이전에도 미국에 1년간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나를 지켜줄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가족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오롯이 나 홀로 서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런던에서 나는 각종 세금(수도세, 전기세, 인터넷 요금 등)을 직접 지불하고,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했으며, 먹고살기 위해 장을 보고, 생활을 유지(?) 하기 위해 예산 관리도 철저하게 해야 했다. 물론 이전에도 대학시절 자취하며 해본 일들이지만 외국에서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런던에서의 삶은 편안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바빴고, 남이 무엇을 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라는 개념보단 '나'라는 개념이 큰 곳이라고 느껴졌다. 아마도 런던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자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어떠한 이유였던지 간에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런던에서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사진을 많이 찍었고, 3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때를 생생하게 추억할 수 있는 수단이 내게 남아있다.


런던의 거리는 그 어떤 장식도 놓칠 틈 없이 아름답고 장식적이었다.


또, 런던에서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공간이 서울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인 것 같다. 출퇴근 길에는 크고 작은 상업지구가 있었는데 브런즈윅(Brunswick)도 그중 하나였다. 여기서 아침에 출출하면 감자칩을 사 가거나 주전부리를 구매해서 하나씩 먹으면서 가기도 했고, 스타벅스도 있어서 힘이 없는 날에는 프라푸치노를 사서 마시기도 했다. 근처에 대학이 여럿 있어서 학생들도 많았고 젊고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가 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한국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공간. 난 역시 도시가 좋다.



2. 매일 먹는 점심 메뉴


박물관에서 점심은 캔틴(Canteen)이라고 부르는 구내식당에서 늘 해결하곤 했다. 큐레이터 선생님과 같이 먹기도 하고, 가끔 시간이 안 맞으면 혼자 먹기도 했다. 다 같이 먹기에 좋은 원형 테이블도 있었고, 4~6인용 테이블도 있었으며, 혼자 먹기 편한 창문 쪽 바 테이블(?) 같은 공간도 있었다.


덜 배고픈 날에는 연어 샌드위치에 디저트까지 꼬박꼬박 먹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18년은 해외에서 일하기에 최적의 해였던 것 같다. 월드컵이 개최되었고, 기적적으로 대한민국이 독일을 이는 통에 밥 먹다가 다들 나를 쳐다보며 손뼉 쳐주기도 했고(?), 2018년 남북정상회담까지 진행되는 바람에 박물관 안팎으로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김정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정도였다. 특히 박물관에서 나처럼 외국인 노동자(?)로 근무하는 동유럽에서 온 직원들은 신기하게도 내가 한국 사람인 걸 단박에 눈치채고 먼저 '한국인이냐'라고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같은 외국인 노동자로서 느껴지는 동질감과 따뜻함이 있었다. (?) 그런 따스함이 가장 많이 오간 곳이 구내식당이기도 했다.


피시 앤 칩스 1)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통한 감자튀김은 한국에서 버거킹에서 만나볼 수 있다.


캔틴에서는 영국답게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는 매주마다 나왔다. 대구(Cod)라는 생선으로 요리한 이 메뉴는 사실 생선가스를 선호하지 않는 내게는 너무 느끼하고 먹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그렇지만 감자의 나라답게, 칩스라 부르는 감자튀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 취향에 따라 소금을 찍어먹기도 하고, 마요네즈를 찍어먹기도 하고, 케첩을 찍어먹기도 하며 감자튀김을 즐기는 여러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피시 앤 칩스 2) 으깬 콩(?)으로 만든 Mushy Peas. 외형은 정체불명이나 맛은 나름 고소한 것이 내 취향이었다.


유럽이라 그런지 메뉴도 참 다양하게 나왔었다. 타코, 중국식, 이탈리아식 등등 구내식당 구역 A, B 선택지 중 원하는 메인 메뉴를 고를 수 있었고, 여러 취향의 채식주의자들에 맞추어 메뉴가 제공되기도 했다. 점심을 급하게 먹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샌드위치, 과일 꾸러미, 샐러드바가 따로 마련되어 있기도 했는데, 늘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하여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재미도 있었다.


메인도 받아먹고 샐러드에 디저트까지 매끼니마다 따로 받아오는 나는 박물관 구내식당의 최대 수혜자였다.


박물관 구내식당은 외부 식당 대비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나 어렴풋하게만 기억이 나지만, 대략 5파운드 이내로 디저트까지 해결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주아주 저렴하게 먹으면 3파운드 정도로 해결할 수 있었다. 먹성 좋은 나는 많이 먹는 한국인 소녀(?)였고, 구내식당 아침메뉴를 먹기 위해 일부러 일찍 출근한 날도 있었다. 아침 메뉴로는 향이 기가 막힌 크루아상과 유럽식 빵이 주로 나왔고, 과일 컵, 맥모닝에서 볼 법한 해시브라운과 호텔 조식 같은 소시지 구이와 양송이버섯 볶음이 나왔다.


특이한 점은 내가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리 한 여름에도 아이스 음료를 즐겨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 캔틴에서 카페 담당 직원분과 조금 안면을 튼 뒤 얼음을 따로 달라고 요청하여 겨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직접 제조해서 먹을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게 주었던 얼음도 음료에 넣어먹는 용도로 만들어진 게 맞는지도 의아하다.. 한국에서 흔히 볼법한 단단한 얼음이 아니라 음식 냉동용 간이 얼음(?) 같은 느낌이 어렴풋이 든다.


아침메뉴로 나온 과일꾸러미와 크로아상, 그리고 한 여름에도 따뜻한 것만 고집하는 유럽 사람들.


매일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정도로 아이스커피에 중독되어 있던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을 다시 되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박물관 입구에 위치한 아이스크림, 와플 판매점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것을 보았고, 다른 소다 음료에 들어가는 얼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한국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주셨다. 나름 영국에서 '아아메' 마시기 꿀팁(?)이라고 널리 알려주려고 했는데, 아마 요즘은 런던도 더운 날들이 지속되는 기후 이상 현상 때문에 아이스 음료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서 더 많이 판매되고 있을 것 같다. 사실 그 후로 방문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다시 박물관에 가보고 싶다.


업무가 끝나갈 7월 초 즈음에 발견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홀더마저 멋짐이 폭발한다.




원래는 2회에 걸쳐서 영국박물관을 소개하려 했더니,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많아지고 지루해질 것 같아서 적당히 끊어서 가야겠다.


이번에는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조금 티저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다음 편에서는 업무와 관련된 얘기를 더 풀어나가야겠다. 전시 기획과 세계적인 수준의 보존 및 복원 시설을 소개하고, 런던에서 일하면서 파리로 출장 가고 공예 페어 콜렉트에 초대되어 방문한 이야기도 조금 더 소개하도록 하겠다.


다음회차 예고 Teaser

3. 박물관 안에서 일어나는 업무들 1 - 전시 기획

4. 박물관 안에서 일어나는 업무들 2 - 보존 및 복원

5. 외부 출장 - Collect 2018, Guimet Paris


마지막은 귀여운 비둘기 픽토그램.



끝.







※ 본 글은 철저히 작성자의 경험과 상황에 입각하여 쓰인 글로, 주관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주어진 현상에 대한 절대적 정답이 아닙니다. 저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은 참고용으로만 봐주시고, 재미로 봐주시는 분들께서는 부족한 글이지만 어여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생산적이고 유용한 피드백에 열려있습니다!


※ 글에 실린 모든 사진은 저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2차 가공 및 무단 활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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