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피종결자 Aug 23. 2021

금요일이 특별한 이유가 전사회의때문이라니?

TGIF(Thank God It's Friday)는 아주 흔히 쓰이는 말이고, 다른 회사들도 TGIF라는 이름으로 금요일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전에 일한 독일 회사는 매주 금요일 TGIF 풍선을 달아 놓고, 오후 2-3시쯤 함께 모여 간단한 스낵과 맥주를 나누어 먹는 소소한 소셜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TGIF라는 이름으로 매주 금요일 CEO가 진행하는 전사 회의를 연다. 이 회의에서는 최근 회사와 관련된 뉴스, 제품 론칭 소식, 추후 출시하는 제품, 문화 또는 정책 등 그 주에 가장 뜨거운 주제들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공유한다. 예컨대 해당 분기 실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작년부터 우리의 피를 말리는 코로나와 그로 인한 업무 환경 변화, 혹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관한 논제를 다루기도 한다. 전사 회의라는 말 그대로, 전 직원이 이 회의에 초대된다. 다만 몇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화상 회의로 접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무대 밖 직원들은 생중계로 시청하게 되어 현장의 생동감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지만, 가끔 한국 오피스와 관련된 언급이 있을 땐 어쩐지 굉장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느낌에 괜히 짜릿하기도 한 것이 그 장면을 스크린숏으로 저장하여 팀원들과 공유하고는 '와~'하고 환호성을 외치는 그런 조금은 유치한 짓도 하게 만드는 회의이다.  


이 회사에 오기 전에도 전사 회의는 언제나 있어 왔다. 다만 그곳에서의 회의는 마치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 모여 잔뜩 얼어붙은 자세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아침 조례와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이 차이일 뿐. 대표가 작정하고 농담을 몇 마디 정도 해야 다 같이 어색한 웃음을 살짝 날릴 수 있는 정도고 전반적으로는 누가 언제 혼이 날까, 뭐가 잘못될까 참석자 모두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였다. 기본적으로 직원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일도 드물었다. 기회를 준다 한 들, 자유롭게 대표에게 정말 묻고 싶은 것을 묻는 용감한 직원은 없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회의는 특정 부서나 직급만 초대되는 경우가 많아 전사 회의는 대게 연초나 연말의 의례적 행사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전사 회의를 ‘좋아한다는 건’ 내게 그만큼이나 어색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곳의 TGIF 무척 색다르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학급 회의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사회 같기도 한 것. 직원의 직책과 직무를 넘어 직원 모두에게 중요한 정보를 요약하여 CEO와 그룹의 리더들이 보고해 주는 장. 그 내용에 관해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넘지 않는 선에서) 궁금한 것들을 자유롭게 묻고,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회의에서 구두로 혹은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후 서면으로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기회. 그래서 모두가,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함께 가고 있는 것인지를 계속 생각하도록 만드는 시간. 어쩐지 좋은 말만 나열하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런 이유에서 이 전사 회의가 ‘좋다'. 


내가 더욱이 아끼는 TGIF는 사실 이 전사 회의가 아니다. 각 오피스에서 금요일 오후에 진행하는 ‘찐' TGIF시간이다. 한국 오피스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 다양한 음료(맥주, 샴페인 등)와 안주가 제공된다. 음료와 안주는 매주 다른 메뉴가 제공되는데, 메뉴에 따라 TGIF에 참석하는 직원들의 숫자도 많이 좌우되기도 한다. 입사 후 몇 주 TGIF를 즐기고 나니 맘만 먹으면 여기서 한 달 안에 5kg은 식은 죽 먹기로 찔 수 있다는 동료들의 농담이 무섭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제공되는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로 이미 배가 빵빵한데, 그 중간중간 스낵을 집어 먹다가 금요일엔 저녁 식사 전 맥주와 안주라니. 허허허. 이래서 다들 퍼스널 트레이닝을 힘들게 받는구나 싶었다. 워낙 회식을 잘하지 않는 회사이기도 하고, 업무 밖 시간의 모임이나 활동은 다 ‘자발적 참여' 기준이라 자칫하면 동료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다른 회사보다 적을 수 있지만 TGIF는 그런 부족함 혹은 아쉬움을 해소해준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다. (물론, 아쉽게도 직원들을 살찌우던 이 사무실 TGIF는 코로나 때문에 작년부터 무기한으로 연기되고 있다.) 


TGIF는 다양한 사내 이벤트가 열리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카페 중앙에는 이벤트를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프로젝터와 빔, 오디오 비디오 장치들이 잘 구비되어 있다. 직원들이 가장 몰리는 시간에 약 15분 정도를 할애하여 어떤 팀에서 나와 비즈니스 업데이트나 최근 한국 내에서 흥미로운 뉴스 등을 들려주기도 하고, 사무실 관리팀이나 푸드팀에서 그 주에 있는 명절 혹은 기념일과 관련한 게임을 진행하기도 하며, 문화 수호단에서 원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회사의 문화적 가치에 위배되지 않는 한, 사실 직원 누구든 본인이 해보고 싶은 이벤트나 프레젠테이션을 이 시간을 이용해 시도해볼 수 있다.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일'이지만 어쩐지 이 시간을 위해 들이는 시간이나 노력은 일 같지가 않다. 


나는 문화수호단에 소속되어 있어, 작년부터 많은 사내 행사를 진행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해당 분기에 모인 신규 입사 직원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함께 참여하는 직원들이 좀 더 집중하여 신규 입사자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게임 형식을 빌렸다. 10명의 신규 입사자가 3분 이내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그중 한 명은 정말 거짓된 정보로 소개를 하는 이른바 ‘마피아 찾기'였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도록 나머지 9명도 본인에 대한 내용 중, 가장 믿기 어려운 사실들을 몇 가지 넣어 직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본인이 아프리카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본인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포스터를 100장 넘게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었고, 이 기회로 한 명 한 명을 기억할 수 있는 키워드를 몇 가지 알게 되어 추후에 다른 사람들과 업무 미팅을 진행했을 때 훨씬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평을 받았다. 


2020년 3월부터는 COVID-19로 인하여 직원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따라서 모두가 애정 하는 TGIF를 카페에서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TGIF를 계속 취소하자니, 모두가 잠시 업무를 내려놓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그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몇 명의 직원들이 모여 상황이 개선될 때 까지는 TGIF를 가상으로 즉, 화상 회의 시스템으로 진행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약 30분 정도 직원들이 모여 퀴즈를 풀며 우승자들에게 재택근무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는 선물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사실 금요일 오후 누가 화상 회의에 접속하여 같이 게임을 하고 싶어 할까, 그 시간에 일 빨리 끝내고 컴퓨터를 덮겠지 하는 마음에 기대치가 크지 않았는데 많은 직원들이 다른 직원들과 서로와 연결되는 그 시간을 그리워한 것 같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더니 그 말이 여기서도 실감이 났다. 누군가는 집에 함께 있는 가족원이나 반려 동물들과 함께 입장하여 다른 직원들로 하여금 흐뭇한 부모 미소를 짓게 했다. 참 희한하게도 그러는 동안 스트레스가 풀렸다. 이 퀴즈 쇼를 진행하는 동안 계속 낄낄대고 웃었더니, 옆에 있던 남편은 도대체 너 일하는 게 맞냐며 몇 번을 물어댔다. “응, 나 진짜 일하는 거 맞긴 하는데 너무 웃겨!!!” 모두가 일주일 내내 업무로 지쳐있다가, 그나마 한주의 마지막 30분이라도 이렇게 함께 웃으며 끝낼 수 있다는 게 마음이 놓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Power of recognitio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