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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Sep 06. 2021

Survey, survey, survey

다수의 의견과 피드백을 통한 의사 결정

친한 동료 중 한 명이 어느 날 서베이(설문조사)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다. 동료가 입사한 지 약 3개월 정도 된 때였다. ‘이제 직원들에게 설문조사 돌리는 것 너무 무서워.. 설문조사 트라우마 생긴 것 같아!’라는 웃픈 고충을 듣고 단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입사 초반엔 그런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에 오기 전에는 사실 설문조사라는 걸 별달리 해 본 기억이 없다. ‘설문조사 스티커 하나만 붙여 주세요~’라며 길거리에서 나를 붙잡고 후원금을 홍보하는 아르바이트생이나 선거 전 여론 조사관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아니면 회사 안에서 행했던 설문조사는 고작 회식 메뉴나 날짜를 정하기 위한 팀원들의 채팅창 투표 정도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선 과장을 보태지 않고 정말 거의 모든 업무에 설문조사를 돌린다. 그러다 보니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설문조사 요청 이메일을 받는데 이는 ‘피드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나아가 회사는 설문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하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 하나하나에 대해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설문조사가 매우 번거롭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된다. 특히 사람들은 피드백이 부정적인 경우 그것이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리지는 않을까 혹은 업무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부정적 피드백이 자신의 그 업무가 아니라 자신 전체를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져 상처를 받기도 한다. 따라서 그런 피드백을 남들과 공유하는 것은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직원들은 긍정적인 설문조사 결과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그 일을 한 사람들을 더 널리 칭찬하고 격려하는 근거로 쓰고, 부정적인 설문조사 결과는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잣대로 쓴다. 부정적 피드백은 자신이나 그 일에 대한 부정이나 비판이 아니라, 본인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거름이라는 단단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피드백을 공유하면 다른 직원들도 비슷한 일을 할 때 참고할 수 있어 상호 간에 도움이 된다. 


설문조사가 쓰이는 범위는 실로 다양하다. 때로는 어떤 의사 결정을 할 때 그 결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의견을 취합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 혹은 팀이 운영한 프로젝트나 이벤트에 참여한 직원들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기도 한다. 펄스 체크(Pulse Check)와 같이 현재 운영 중인 일들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중간 점검을 위한 설문조사를 수행하기도 한다.  더불어 다른 직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력 업체는 한 번 한 번의 서비스마다 서비스 품질 평가를 요청한다. 


설문조사는 심지어 전 사회의 나 리더십이 주관하는 미팅은 물론, 멤버들끼리 운영하는 회의를 평가하는 데도 사용된다. 금번 미팅의 어젠다는 시기적절했는지, 미팅 내용은 비즈니스나 회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미팅 시간은 적절했는지, 다음 미팅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을 듣지 못해 아쉬웠는지 등 미팅의 실효성과 유용성을 묻는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솔직한 피드백을 공유하는데 거침이 없다. (여기서 솔직함이란 피드백을 받는 팀에게 도움이 되는 설루션 지향적인 비판이지 타인을 예의 없이 깎아내리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연례 설문조사 중에는 1년에 한 번 회사의 경영을 평가하는 것도 있다. 이는 세계 모든 직원이 디렉터 이상의 상사나 회사 생활의 전반을 평가하는데 쓰이는 것으로, 직원들의 만족도나 평가하고 다음 해 리더십에서 개선해야 할 액션 아이템을 선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워낙 중요한 설문조사이다 보니 매년 각 팀에서는 팀원들이 설문조사에 참여하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독려한다. 대부분의 업무 관련 설문조사가 50% 이상의 응답률을 보이지 않는 반면, 이 조사는 매년 90%에 가까운 응답률을 자랑한다. 무엇 일이든 강요보다는 자발적 참여를, 협박보다는 재미를 통한 동기부여를 중요시하는 리더들은 응답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응답률과 관련한 공약을 내놓기도 한다. 예컨대 한 리더는 95% 이상의 팀원들이 설문조사에 참여할 경우 당시 대히트를 친 겨울왕국의 엘사 분장을 하고 Let it go 노래를 부르겠다는 공약을 걸기도 했다. (물론 그는 공약을 지키는 행운을 맞이했다.) 


반면 설문조사가 야기하는 피로도 물론 만만치 않다. 사실 빠르고 쉬운 의사 결정은 자신의 Gut feeling(직감)과 판단을 따르는 것일 테다. 내가 이 일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오래 해왔는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굳이 취합해야 할까? 하는 질문이 들 때도 있고, 가끔은 정말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고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까 하는 (민주주의와 다수결이 언제나 좋은 결정을 이끌어내는 것일까 하는 질문과도 비슷하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컨대 한 번은 시설팀에서 새로 증축하는 사무실 공간에 만들어지는 미팅룸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설문조사를 통해 직원들의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다. 미팅룸에 왜 이름이 필요한지, 그게 왜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시설팀이나 리더십에서 좋은 이름을 지어 공유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또 그 반대편에는 우리가 매일매일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름이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쉬워야 하고 또 이름의 의미나 상징성도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직원들도 있다. 그렇기에 이 설문조사는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것이었다. 설문조사에서 묻는 질문에 따라 정말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원하는 미팅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를 물으면 의견의 홍수에 빠지게 될 테고, ‘미팅룸 이름과 관련한 콘셉트로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옵션이 있는데, 어떤 콘셉트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까?’를 물으면 왜 직원들의 의견은 묻지 않고 마음대로 상위 옵션을 한정 짓느냐는 불평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설문조사를 통해 어떤 의견을 어떻게 묻고 그 결과는 어떻게 취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고민 끝에 설문조사를 또 돌리게 되는 것은, 운영진은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나 관점을 짚어주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한국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프로필에 ‘한국 오피스'를 대표하는 로고를 만들어 달라는 콘테스트를 연 적이 있었다. 후보자 로고들을 두고 직원들의 투표를 요청할 때, 자신이 왜 그 로고는 선택 혹은 선택하지 않았는지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 항목이 있었는데 그때 해당 로고가 태극기 디자인을 변형한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거나 어떤 점에서 특정 소수 집단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어 후보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등 미처 고려하지 못한 민감한 부분들을 상기시켜주어 매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 어떤 항목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응답자들의 의견이 반반으로 나누어 지거나, 아주 근소한 차이를 보일 때는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응답자들에게 커뮤니케이션할 것인지도 고민이 많이 된다. 어떤 미팅을 없애자는 사람이 반, 그대로 유지하자는 사람이 반인 경우가 그 예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럴 때는 미팅을 없애자는 사람들에게 1:1이나 혹은 이메일을 통해 어떤 이유에서 미팅을 선호하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미팅이 그들에게 유용한 채널이 되도록 개선할 수 있을지 파악하여 반영하려고 하기도 하고 혹은 미팅이 유용한 사람들로 초대 그룹을 축소하는 방법을 택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필요시 내용을 별도 공유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런 결정을 내릴 때에도 결국은 어떠한 근거에서 해당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설문조사'를 행하는 것 자체가 설문조사를 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심'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다. 현재 복리후생에 만족하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뿌리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직원들은 이 설문조사를 근거로 리더십에서 복리후생을 재검토하고 개선하려나보다는 기대를 갖게 될 테다. 설문조사 상단에 ‘복리후생을 가까운 시일에 변경하는 일은 없다'라고 명확히 명시해도 설문조사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스마트한 직원들이 있는 이상, 괜한 오해나 루머를 생산할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의도가 분명하지 않은 설문조사는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직원들도 알고 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선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지지하는 사람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 결정에 만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설문조사를 통해 모두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을 모두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오히려 본인이 주도하는 일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가장 값진 피드백을 얻을 것인가 하는 노력.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피드백을 어떻게 소화하고 이용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과 결정을 다른 동료들에게 묻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메시지를 다듬고 결정의 타당성을 고민하는 것이야 말로 설문조사를 이용하는 핵심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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