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피종결자 Sep 15. 2021

새로운 일에 대한 갈망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언제나 내 이력이 불안했다. 꾸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력. 누가 봐도 나는 업무가 편안해지는 시점이 오면 새로운 곳 기회를 찾아 이직을 해대는 끈기 없는 젊은 세대 중 한 명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욕심이 너무 많았고, 내가 머무르고 있는 조직에서는 내가 마음껏 욕심부리도록 허락해 주지 않았다. 전 직장에서는 내가 맡은 업무(그중 대부분은 상명하달로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잘하면서 상사가 원하는 성과를 가져오고 그렇게 몇 년을 잘 버티면 해당 부서에서 승진을 하는 것이 유일하게 내 업무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었다. '새로운 업무도 해보고 싶다'는 나의 요청이 당시 상사에게는 어쩌면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한 번 '새로운 것'은 갈증이 들기 시작하면 물을 마시기 전까지는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고 나는 그럴 때 이직을 택했다. 그래서 일관성 없고, 잦은 이직으로 물들여진 내 이력서가 끈기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큰 흠이 될까 언제나 불안했다. 그리고 다행히 이 회사에 들어온 뒤에는 그런 불안감이 사라졌다. 

현재 회사에서는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그리고 그 어느 기업보다 회사 내부 채용 공고를 통해 직무를 변경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물론, 열려 있다는 것은 쉽다는 말이 아니다. 직무 변경을 위해서는 신규 입사자처럼 지원서를 내고, 여러 차례 면접을 보는 과정을 공정하게 겪어야 한다.) 다른 직장에서는 내부에서 직무를 변경하고자 할 때 제약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현재 소속된 팀의 상사가 팀원을 다른 팀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면 실상 다른 팀으로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상사의 승인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하게 새로운 팀에서 찾는 자격 요건이나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해온 업무와 연관성이 없는 직무일 때 그런 능력을 증명할 만한 방법이 부족했다. 이곳에선 적어도 첫 번째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두 번째 제약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충분히 열려 있다.  


예컨대 이곳엔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다. 모든 직원들은 자신의 코어 업무에 가장 큰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지만, 본인이 관심 있는 내부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면 그에도 10-20%의 리소스를 할애할 수 있다. 코어 업무만으로 이미 너무 바쁜 데다 완전 다른 업무에 시간과 노력을 나누어 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동기는 다양하다. 다른 업무를 배워 추후에 트랜스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함일 수도 있고,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을 수도 있고, 앞서 말한 성장 프로그램처럼 회사의 성장에 보탬이 되고 싶어일 수도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해당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팀에게도 유용하다. 풀타임으로 직원을 채용하기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때 사이드 프로젝트 참여자를 내부에서 모집하여 운영하면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래서 일회성 혹은 단기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다른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번지라는 게 있다. 이는 어떤 업무를 맡는 직원이 육아 휴직과 같은 이유로 부재할 때, 그 특정 기간 동안 그 일을 맡아할 수 있는 다른 직원을 뽑는 제도이다. 그 일을 맡는 직원은 본인의 업무를 잠시 떠나 새로운 일을 맡아하게 되고, 그 기간의 성과 평가는 그 새로운 일에 관련해서만 이루어진다. 대신, 완전히 팀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서 관심 있는 번지 기회가 생겨 도전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는 직속 상사의 지원이다. 본인이 원래 맡고 있던 업무를 남아있는 다른 직원들이 나누어 커버할 수도 있고, 그 기간 동안 진행을 잠시 보류할 수도 있고 아니면 본인의 포지션에 임시직 직원이나 같은 방식의 번직 직원을 뽑아 메우는 방법 등이 있는데 그 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번지의 기회일지라도 당연히 진행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신의 업무가 굉장히 중대한 상태에 있으면 번지를 지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타이밍'이라는 건 이 번지에서도 무척 중요한 요소이다. 사이드 프로젝트와 비교하여 매니저의 지원만 있다면 풀타임으로 본인이 관심 있는 팀의 일을 시도해보면서 자신이 그 일을 잘하는지 테스트해볼 수 있다. 


직원들은 지원 공고를 통해, 직무 트랜스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다른 오피스로 이동하는 사례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 오피스에 자신이 관심 있는 포지션이 없는 경우,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오피스의 규모가 크고 프로젝트가 많은 곳에서 기회를 찾아 이동하는 직원들도 있다. 내부 공석에 지원을 할 때는 파이널 라운드에 갈 때까지 본인의 매니저에게는 기밀이 유지되어 크게 마음의 부담을 갖지 않고 도전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매니저와의 열린 소통을 매우 중요시하고, 평소에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매니저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도록 장려하는 회사 문화 덕분에 기밀 유지 여부와 관계없이 관심 있는 기회가 생기면 매니저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많고, 매니저가 적극적으로 팀원의 성장을 위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든 가르칠 수 있는 게 하나는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