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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Sep 30. 2021

리더에게 요구되는 수만 가지의 자질과 기대

본래 리더직에 욕심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가끔 ‘내 밑에 몇 명이나 있는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기 밑으로 더 많은 팀을 끌어다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팀원이 1200명이 넘었을 때 해고당한 A 부사장을 떠올리면 더욱이 그렇다.) 경력 7년 차가 되었을 때, 팀장이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네가 이룬 것을 다른 리더들에게 어필하는 것도 중요해. 그래야 내가 팀을 떠날 때, 네가 팀장을 맡을 수 있지 않겠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월급을 많이 받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야 한없이 기쁜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를 이끄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 자격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한두 명의 사수로 일을 하면서도 그들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들의 능력이 못 미더워 내가 가진 일을 위임해 주지도 못했으니. 변명 같지만, 어쩌면 그때까지 '리더직'에 대해 자신 없던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지향하는 모습의 리더를 직장에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해서였던 거 같기도 하다. 


전 직장은 정부의 급진적인 에너지 정책 변화로 인해 회사의 전략과 이에 따른 조직 변화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조직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직원들 간에 정치, 권력 싸움, ‘수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더 많은 팀원을 확보하기 위한 힘겨루기가 눈에 훤했다. 그런 미묘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조직의 장이 된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과연 저 중에 누가 자신이 좋은 리더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자신이 지향하는 리더십을 정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말 팀을 위한 리더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말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대부분은 그저 명예욕에 심취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무게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했다.  


술자리에서 리더직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던 중 친구들에게 왜 팀장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친구 A: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이후에도 계속 팀원을 남아 있으면, 결국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거니까- 그 정도면 회사를 나가라는 소리 아니야?'

나: 근데, 업무 능력은 겁나 뛰어나도 팀장으로서의 리더십은 뛰어나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연차가 쌓였다는 이유로 더 큰 직책을 꼭 맡아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이런 사람들은 계속 실무자 위치에서 높은 성과를 내도록 유지하는 게 않나? 

친구 A: 회사들은 거의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리더십도 높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걸 분리하긴 어렵지. 연차가 쌓였는데 둘 다 못하면 나가야지. 

친구 B: 팀장이 되어서 빨리 아랫사람들에게 일 시키고 나는 실무에서 이제 손 좀 떼고 싶다 진짜.. 

나: 그럼, 팀원들은 팀장이 주는 먹이를 기다렸다가 분장된 업무만 처리해야 해? 그렇게 시키는 일만 하다가 갑자기 리더가 되니까 다들 존경받지 못하는 리더가 되는 것 같은데. 

자꾸 반문하는 덕에 밤새 이야기를 해도 모자랄 만큼의 논쟁이 이어졌고, 나는 술맛 떨어지는 대화 주제를 들고 왔다고 욕을 한 사발을 먹었다. 


현 직장의 직원들 대부분은 당연히 성취욕이 강하고, 명예욕도 있다. 그러나 나처럼 리더직 자체에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곳에서  기대하는 역량이 많고 또 어렵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해서 오래도록 그 일을 잘하고 싶은데, 리더가 되면 팀원을 위해 할애해야 하는 에너지와 시간이 많아지니 당연한 고민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사람이 매니징을 해도, 본인은 평생 그 자리에서 개발만 하고 싶다는 엔지니어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 일 하나를 하기에도 벅찬데, 팀원들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건 분명 보통일이 아니다.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팀원들이라면 뭐 굳이 고민할 것도 없지만, 이곳에서 팀장은 시키기보다 팀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며, 팀원들이 큰 방향 안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전략을 짤 수 있도록 기다리고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제일 똑똑해서 리더가 된 것이라기보다 나보다 더 똑똑한 팀원을 발굴해야 하는 미션을 받았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하다. 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팀원의 워라벨과 건강, 업무 만족도도 계속 세심하게 체크해야 한다. 얼마 전 A팀의 팀원 하나가 B팀이 요청하는 업무를 돕느라 무척 고생 중이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A팀 팀장이 많은 팀장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여러분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 팀 팀원이 최근 XX 관련 업무로 밤늦게도 연락을 받고, 새벽에도 이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이 팀원도 여러분처럼 주간에만 일을 해야 하는 직원이라는 걸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팀원이 밤늦게 연락을 받고, 밤새 일을 처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러분과, 여러분 팀의 팀원들이 배려해 주셔야 합니다. 당연시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권고했다. 매우 묵직하고 점잖은 이 한마디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반성하게 했고, 그 팀원의 마음을 깊게 울렸다. 


리더는 팀원이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제든 커리어 방향을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더 높은 리더십에서 논의되는 정보들을 계속 팀원들과 적시에 공유해야 하며,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이 모든 시간 동안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가치인 다양성과 포용성도 빼먹으면 안 된다. 게다가 팀원이 많아질수록 그 한 명 한 명의 성과 평가를 위해 들여야 하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저 본인 밑에 얼마나 많은 팀원이 있는 가에 기뻐할 수많은 없다. 자신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팀 안에서 또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는 리더를 찾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뭐, 심지어 팀원들이 평가한 내 점수도 매회 두 번씩 공개하고 부족한 점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지 공약도 해야 한다. 이렇게 말로만 나열해도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무섭지만 결코 리더의 어깨가 가벼울 수 없는 이유, 그저 자신의 성취욕이나 명예욕을 위해 쉽게 리더를 맡아서는 안 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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