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 ‘항상 남을 도와줘라' 학창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들었던 말. 그러나 어찌 된 게 사회에 발을 딛는 순간 잔소리는 180이다 달라진다. '인마, 한국에선 너무 친절하거나 잘해주면 호구되기 십상이야.'라고. 그래서인지 한동안 직장인 처세술의 일환으로 '직장에서 호구 안 되는 방법'과 같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속에는 '내 일처럼 도와주면 그게 내 일인 줄 안다'는 등의 허를 찌르는 노하우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나는 유전적(?)인지, 후천적 세뇌교육 덕분인 뼛속까지 본래 자발적 호구를 자처하는 성격이라 회사에서 누가 업무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거의 대부분 예스를 외쳤다. 그래서 전 회사에서는 팀장으로부터 타인의 요청을 적당히 끊어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듣기도 했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같은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의 요청을 상사의 눈치를 봐 가면서 들어주고, 그것마저도 똥줄 타게 급한 건드리나 긴밀히 협조하는 유관 부서의 업무가 아니면 내 일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도움 요청을 거절하고는 했다. 아니면 정말 최소한의 정보를 던져주고는 그 사람이 알아서 그것을 이해하고, 응용하도록 방치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한 을의 직원은 갑의 자료를 보고 계속 갑에게 ‘죄송합니다만..’이라며 조심스레 추가 질문을 하고 ‘너무 급한데 꼭 좀 부탁드립니다' 라며 읍소를 하는 일도 많았다. 모두가 너무 바빠 여유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경쟁 상대라 남을 돕는 게 본인에게 더 이득이 되지는 않고, 결국엔 그냥 본인만 추가로 더 일을 한다는 통념이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것 같다.
현 회사는 매우 신선하게도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받은 교육처럼 '친절함'의 가치를 다시금 강조한다. 일하다 보면 ‘Be kind to others’를 자주 듣는 이유다. 입사 초기 종종 나는 회사가 그 긴긴 면접의 시간 동안 좋은 사람들만 검증하여 뽑는 것인지, 아니면 회사에 와서 다른 사람들로붵 영향을 받으며 더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인지 궁금한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 이유는 입사 후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만 슬쩍 던져주는 게 아니라 미팅을 잡아 하나부터 열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매니저는 계속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힘든 점이 없는지를 묻고 어려운 상황을 혼자 감당하거나 스트레스가 큰 경우에는 주저 없이 얘기하라고 독려한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팀원들은 계속 서로를 트랙킹하고 본인이 더 도와줄 것이 없는지를 묻는다. 팀을 옮기면, 새로운 팀의 팀원들이 내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 1:1 미팅을 잡아 본인의 업무를 설명해 주고, 공유할 수 있는 리소스를 전달해준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직원들 중에 당연히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다소 못된 사람들도 당연히 있지만 다수의 좋은 사람들이 장악하는 전체적 문화와 분위기 때문에 대놓고 그런 성격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혹 협업이 매우 어려운 직원과의 관계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이메일에 계속 답변을 하지 않는 동료에 대해 불평을 할 때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선한 의도'이다. 그들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선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라는 뜻이다. 조금 더 좋은 답변을 주기 위해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수도 있고, 문화적 차이나 개인적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 사람 자체를 비판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그들이 좀 더 협업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이 정도면 정말 부처급의 이해심이 아닌가?! 난 역시..... 아직 멀었다.)
친절함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사과이다. 매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오해를 야기하는 일도 많이 일어난다. 그럴 때면 명확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해야 한다. 일주일이 넘도록 이메일 답장이 오지 않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채팅창으로 '혹시 내가 지난주에 보낸 이메일에 대해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보냈더니, 그 동료는 '아! 답장 많이 기다렸겠구나 미안해. 그런데 내가 지난주에 휴가였다가 오늘 복귀해서 미처 그동안 쌓인 이메일을 다 못 보았어. 내일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하루 이틀을 더 못 참고 독촉을 한 것이 미안해서 '미처 네가 휴가였던 것을 모르고 본의 아니게 독촉해서 미안해!'라고 빠르게 사과했다. 또 한 번은, 미팅 시작 중에 생각 없이 'Good morniing, ladies'라는 말을 썼는데, 성 정체성과 관련하여 배타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는 한 동료의 친절한 지적을 받고 곧바로 생각 없이 쓰는 단어들에 대해서 모두 앞에서 반성하는 계기를 가진 적도 있다. 친절함의 길은 멀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직원들 모두가 감정 표현에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하는 일을 하지만 엄청나게 고맙다는 표현을 많이 할뿐더러 이 팀에서 일하게 되어 정말 행복하다거나, 사랑한다거나, 정말 자랑스럽다거나, 이 일이 너무 신난다거나 지루하다는 등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을 다들 참 자연스럽게도 해댔다. '직장에선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업무와 감정을 분리하라'는 기존의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친절함이 기본이다.)
기존 직장에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업무와 감정을 분리하라는 기존의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을 거리낌 없이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직원들끼리 내부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모티콘이나 이모지를 이용하는 것도 무척 흔하다. 나도 최근에 아주 솔직히 같은 업무를 하는 다른 지역의 팀원들에게 ‘나를 제외하고 모두 같은 시차의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 한 명을 위해 늦은 시간으로 미팅 시간을 조정하고 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계속 채팅과 이메일로 내가 잘 지내는지, 혹시 나를 위해 더 해줄 일이 없는지 묻는 팀원들과 함께 일해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게 일했다’고 줄줄이 내 마음을 써 내려간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 이메일에 몇 명을 제외한 사람들이 답장을 하며, 다시 한번 서로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이런 팀원들과 일을 하다 어떻게 서로 눈치를 보고 견제하는 회사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 평가에 ‘동료 평가'가 포함되어 있어서 서로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직속 상사만 자신의 성과 평가를 하고, 진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일반적인 회사와 비교하면 최소 3~4명의 동료 평가가 필요한 구글러들은 타인에게 조금 더 관대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동료 평가도 같이 밀접하게 일을 하는 동료에만 해당될 뿐, 업무적으로 관계없는 동료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 회사 전사 메일로 ‘~ 문제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을 찾습니다', 라는 이메일에 몇 분 안에 ‘제가 도와드릴게요' 라며 답장을 주는 수많은 직원들일 나 추가 시간을 할애해 다른 직원들을 위한 교육을 진행해주는 사람들, 자신과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문서를 만들어 공유하는 직원들을 설명하기엔 동료 평가의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지 않을까. 그저 어렸을 때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면 그 친절이 나에게도 돌아온다는 것. 남과 함께 나누면 다 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지나치게 순진하게 들리는 그 말들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고 실천하는 중인 것 같다.
얼마 전 멘토링 세션에서 대만의 한 디렉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곳의 직원들은 모두 다 똑똑하기 때문에, 똑똑한 것만으로는 멀리 가기 어려워. 친절하고 겸손함을 갖추는 게 더 큰 원동력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