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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Jan 26. 2022

못 먹어서 까탈스럽다니

    어려서 할머니가 매일 같이 된장에 호박잎을 쪄먹는 것을 보고 할머니는 된장이 질리지도 않냐고, 고기도 좀 먹고, 빵도 좀 먹고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왜 맨날 된장이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니도 나이 먹어보라고 된장이랑 호박잎이 소화도 제일 잘되고 속도 편하고 맛있다면서 남은 밥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저 호로록하곤 했다. 아직 마흔도 안되었는데 운동을 지지리도 안 한 덕분에 나는 할머니 말마따나 요즘 뭐만 좀 잘못 먹으면, 혹은 많이 먹으면 ‘아유 소화 안돼,,,,,’ 하고 칭얼댄다. 그래서 된장을 끓이고, 잡곡밥을 꼭꼭 씹어 먹고, 외식을 나가면 되도록 평소에 못 먹는 나물을 잔뜩 먹을 수 있는 솥밥 집을 찾는다. 어쩌다 식탐이 폭발해 짜고 기름진 음식을 폭풍 섭취하면 먹기 전까지 배고파 죽겠다를 외치다가도 이내 소화가 안된다고 울상을 짓는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쟤가 또 저러네 하고 혀를 찬다. 


   게다가 난 못 먹는 게 많다. (이건 다 입이 짧은 아빠 탓이다.) 장어처럼 미끄덩대는 애들도 싫고, 오향 냄새가 나는 족발 같은 것도 싫고, 닭발이나 곱창같이 굳이 내가 남의 내장이나 발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위들도 싫다. 어려서부터 위장이 안 좋아 툭하면 급체를 하고 구토를 한 탓에, 가족들도, 나도 웬만하면 거부감이 드는 음식은 억지로 먹지 않는다. 남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메뉴 선택권은 못 먹는 게 많은 내가 쥐고 있어 우리가 먹는 건 언제나 거기서 거기다. 식성이 잘 맞는 것도 커플이 오래가는 좋은 이유라기에 가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여보 나랑 족발, 곱창, 장어 못 먹어서 짜증 나지'라고 묻는데, 남편은 ‘아니 그런 건 그거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먹으면 되지.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둘 다 같이 좋아하는 거 먹고. 난 다 좋아하니까 네가 좋아하는 거 먹으면 되는 거야~ 쉽지?’라고 대답한다. 내 입맛, 내 식성. 세상 사소한 것 같지만 삶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이렇게 편히 존중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이게 굉장히 쉬운 것 같지만 사실 어려운 일이니까. 회식만 봐도 그렇지 않나. 

  

  얼마 전, 가까운 친구가 송년 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만 짜증이 난 채로 불평했다. 

-아니, 열라 예약하기 힘든 고깃집 내가 겁나 애써서 잡아 놨는데 우리 팀 대리 하나가 자기 베지테리언이라고 미안한데 회식 장소를 바꿀 수 없냐는 거야. 아니.. 베지테리언이 무슨 대단한 특권도 아니고, 저 하나 때문에 우리가 다른 식당을 가야 되냐고..? 고기 먹기 싫으면 가서 밥이랑 반찬 먹으면 되잖아.  

앗, 이것은,,, 친구의 얘기를 듣자니 예전에 다시던 회사에서 겪던 악몽이 떠올랐다. 본인이 좋아한다는 이유는 뒤로 숨기고 곱창이 여자 피부에 좋다는 희한한 이유를 들먹이며 회식 때만 되면 곱창집을 데려갔던 노총각 팀장과 법카 쓸 때는 무적권 평소에 못 먹는, 내 돈 주고 사 먹긴 돈 아까운 그런 고급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베이징 덕이나 랍스터, 소고기 특수부위 집을 골라가던 부장님 등이 눈앞에 스쳐간다. 어릴 때 체한 경험이 있어 그건 못 먹는다거나, 베지테리안이라거나, 종교적 이유로 못 먹는다거나 하는 말들은 해봤자 별난 놈이나 자신의 까탈스러움으로 남에게 피해 주는 민폐인이 되기 십상이라 그냥 말하지 않고 얌전히 쫓아가서 젓가락만 깨작대다 오는 게 정상이었다. 먹으면 몸에 어마어마한 알레르기 반응 정도 와야 다른 걸 먹자고 말할 수 있는 강제적 용기가 생기는 그런 분위기랄까. 


   물론 나도 친구와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20명 남짓하는 우리 팀에는 베지테리언이 2명, 해산물을 못 먹는 직원이 1명 있었는데 내가 회식 장소를 정해야 하는 순서가 오면 그게 생각보다 너무 골치가 아팠다. 당최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베지테리언들이 먹을 수 있는 게 없는지, 하다못해 고깃집에는 왜 구지구지 된장, 볶음밥, 냉면에까지 고기를 넣어서 고깃집은 처다도 못 보게 하는지. 그 좋은 해산물은 왜 못 먹어서 고기 대신 초밥도 못 먹게 하는지. 고깃집과 초밥집을 제치고 나면 법카로 갈 수 있는 식당들은 대게 자신이 먹을 음식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외국 음식점-이탈리안, 스페인, 인도 레스토랑이나 호텔 뷔페 정도였다. 그럴 때면 꼭 누군가는 내게 그냥 해산물이랑 베지테리언인 분들에게 한 번씩 돌아가면서 양해를 구하고 한 번은 고깃집, 한 번은 일식집을 가면 안되냐고 물었고 나는 그런 말 때문에 갈등해야 하는 순간이 괴로웠다. 


   친구 넷이서 저녁을 먹을 때도 모두가 잘 먹고 좋아하는 음식을 선택하기 위해 카톡으로 장장 30분간 지루한 논의를 거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회식에서는 소수의 양보를 강요하는 걸까. 왜 회사 같은 큰 ‘집단'으로 오게 되면 각자의 취향이나 의견 같은 그런 다양성은 ‘까탈스러움', ‘별남'으로 변질되어 입 밖에 내기도 어려워지는 걸까. 심지어는 ‘베지테리안이나 비건’이라는 단어를 뱉는 순간 온갖 종류의 편견에 맞서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식물도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도 있는데 그럼 채소는 왜 먹냐, 고기를 안 먹으면 단백질은 어디서 보충하냐, 생선이야말로 수은 덩어리인데 그건 왜 먹냐, 환경이 걱정되면 배달 음식도 먹지 말아야지 왜 고기만 안 먹냐,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너도 그럼 야채로 만든 가짜 고기 패티 좋아하냐 등등등 상대가 어떤 이유로 고기를 먹지 못하는지 이해도 하려 하지도 않고 자기중심적인 잔소리를 한다. 게다가 요즘은 베지테리언이 트렌드라던데라며 모든 베지테리언을 ‘힙스터'로 한대 묶어 은근히 부정적인 눈치를 주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내가 왜 이걸 못 먹는지를 설명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 좋았다. 회식 자리가 많지도 않지만, 어쩌다 한 번 있는 회식에서도 주최자가 돌아가며 못 먹는 음식을 조사하고 그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장소를 섭외했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가 될 때도 언제나 이런 음식을 준비할 예정인데, 먹을 수 있는지를 물어봐주었다. 친구가 ‘아, 내 여자 친구 스테파니는 비건이야'라고 하면 다른 이들은 그저 ‘아, 그렇구나! 그럼 스테파니가 먹을 수 있는 것도 준비할게'라고 응대했다. 걔는 왜 비건인지, 쟤는 왜 이걸 못 먹게 되었는지를 시시콜콜 묻지 않았고, 그저 자연스럽게 서로의 식성을 존중했다. 나는 이런 문화 덕에 사실 한국이었다면 여태 맛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다양한 종류의 비건 음식도 접할 수 있었고, 그것이 내 편견을 바꾸고 경험과 인식을 확장하는 데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다양성’과 ‘개성’이라는 단어조차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해진 2022년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회식 메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소수의 희생이나 양보를 기대하는 걸까. 가끔은 그냥 한 번쯤 신선하게 베지테리언 레스토랑, 아니, 아싸리 사찰 음식점에 가서 한차례 건강한 밥을 먹고 그 경험을 나누는 게 팀을 하나로 만드는 데 더 회식 답지 않은가. 내 돈 주고 사 먹기 아까운 고급 음식을 사 먹는 게 법카를 존중하는 진정한 도리라면, 이왕이면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레어템인 고급 비건 레스토랑 같은 곳을 가서 다 같이 힙스터를 넘어선 무언가가 돼보면 어떤가. 결국 나는 불평을 늘어놓는 친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읊어대며 ‘다양성'을 존중해야지라고 하다가 지쳐 떨어져 “에이 됐어 그냥 회식하지 마 하지 마"를 말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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